Title [나는야 분석화학 조교!]
Date 2009.05.02


최근 분석화학Ⅰ 답안 교정과 채점, 그리고 연습반 준비로 인해 하루 이상을 꼬박 반납했다. 사실 더 급한 건 새로 받은 기판 위에 PS-b-PMMA 판상 구조를 만드는 실험을 하는 것이지만, 아무튼 진형이 형이 '너는 맨날 그것만 하냐?'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줄 정도로 이놈의 '조교질'에 매달리고 있었다.

분석화학은 내가 지금 속해 있는 실험실이 주로 하는 것과는 거리가 다소 있는 편이다. 순전히 정두수 교수님의 은덕(?)으로 인해 지금 조교 자리를 꿰차서 ㅡ 그것도 당당히 최초 조교 결정 시에 지목되어 ㅡ 현재 금요일 연습반을 맡고 있다. 5월 5일에는 시험도 보고 채점도 한다. 오 이런. 정확히 3년 전에 선생님의 수업을 수강했던 수강생이 지금은 그런 수강생들을 돕는 조교가 되었다니. 사실 대놓고 이 자리를 기피하지는 않았다. 교수님께서 4학년 말에 몇 번 암시를 주시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너는 반드시 분석 조교다'라고 말하며 혀를 끌끌 찰 정도로 '분석 조교 됨'은 그야말로 과거부터 기정사실이었던 셈이다.

우리 실험실 선배부터 시작해서 동기인 이랑이까지 내가 정두수 교수님의 분석 조교라는 사실에 대해 매우 안쓰러워한다. 특히 5월 5일, 그 모두가 즐겨 하는 어린이날 공휴일에 시험을 보고 채점까지 빠른 속도로 끝내야 한다는 사실을 전해 드리자 생일에 입대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런 눈빛을 짓곤 하셨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러저럭 잘 해내고 있다. 다행히도 분석화학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모아둔 숙제와 시험지, 답안지 ㅡ 물론 수강생들에겐 절대로 알려주지 않을 것들! ㅡ 가 내게 위안을 주고 있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 다시 최근에 배웠던 것 마냥 기억이 잘 살아나 수강생과 비슷한 처지에서 복습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오히려 분석화학 이후의 수업들을 모두 듣고나서 다시 학부 분석화학 수업을 들으니 이전에는 미처 몰랐거나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자명하게 느껴지곤 한다.

답안 작성과 채점에 드는 시간은 진도가 나갈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긴 하다. 사실 내가 학부생 때 느꼈던 조교에 대한 희망사항을 떠올려보면 정말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50명의 강좌도 이러할진대 100명이 넘는 대형강좌는 참 대책이 안 선다. 코멘트도 달아주고 간략하게나마 해설도 해 주고 싶지만 시간이 안 되는 경우라면 정말 축약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연습반의 존재는 정두수 교수님 강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 연습반은 2시간 가량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한 장의 숙제에 대해 밀도 있게 다뤄지는 편이다. 글쎄,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지만 나는 조교라면 이래야 한다고 학부생 때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과도한 열심과 친절'을 베푸는 조교가 되도록 노력하는 중이긴 하다. 물론 시험 문제나 점수에 대해서는 정말 칼같고 친절하지는 않겠지만, 그 외의 공부나 숙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물리학부 강의에도 연습반이 있었는데 정말 실망 그 자체였던 것을 기억한다. 출석체크만 대충 하고 질문 없으면 곧바로 해산해 버리는 무의미한 연습시간. 사실 학부생들은 이해가 안 가고 모르는 것이 있어도 질문을 쉽게 잘 못한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짐을 지더라도 수강생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줄 만한 사항들을 챙겨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물론 나는 그런 조교를 만나본 적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수강생들에게 똑같이 대한다면 악순환 아닌가. 내가 이런다고 수강생들이 날 알아주거나 특별히 고맙다고 하지도 않을 거란 걸 알지만, 아무튼 이건 조교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시 말하지만, 내가 학부생 때 그런 것을 마음 속으로 요구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만족시키고 싶은 것이다.

졸립다. 자야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