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국장 -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Date 2008.08.23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이 오늘 엄수되었다.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 나는 사실상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 후반기 20년을 지켜봤던 것이다. 14대 대통령 낙선을 지켜보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아태평화재단에서 활동하는 것도 뉴스를 통해 간간이 보았고, 정계 복귀를 선언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는 것을 보았고, 마침내 15대 대통령으로 당당히 선출되는 것을 보았으며, 평양에서 김정일과 손을 잡고 웃는 장면도 보았다. 퇴임 후 건강히 눈에 띠게 나빠지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하는 것으로 심적으로 고통이 더 커졌던 듯 싶다. 결국 1달여간 폐렴으로 입원해 있다가 지난 주 서거.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 남북화해, 호남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하나였다. 국민의 정부라고 명명된 그의 정부는 출범부터 당시 제 2의 국치라고 불렸던 IMF 사태를 떠안고 시작해야 했다. 또한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로 인해 정권을 잃은 보수 진영이 퍼붓는 독설 ㅡ 대한민국의 정체(政體)가 화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ㅡ 로 인해 임기 내내 많은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5년동안 많은 일을 치르면서 경제 회복에 성공했고 남북관계에 엄청난 진전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신용카드대란이라는 후유증이 있었고, 연평해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으며, 말이 좋아 금모으기 운동이지만 국민들의 돈으로 국채를 갚는 이 전근대적인 발상으로 외환보유고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순도 99.99%의 금들을 죄다 팔아버린 것은 가공할 안타까움 이상이긴 하지만. (나도 썩 김대중에게 호의적인 건 아닌 것 같다.)

전체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공과 과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친척들은 대부분 김대중에 대해 부정적이다. 정책과 발언, 그의 살아온 삶의 발자취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정확히 20% 정도 되는 것 같고, 80%는 부정적인 것이다. (그나마 노무현보다 낫다. 노무현에 대해서는 100% 부정적이며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가장 크게 비판받는 것은 그의 남북관계와 관련된 행동인데, 빨갱이와 다름 없다며 서슴 없이 목소리를 높이시는 분들도 계시다. 김대중이 조기 레임덕에 빠지게 된 것은 세 아들과 관련된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부터였는데, 한창 '홍삼 고스톱'이 회자되어 유행할 때 김대중에 대한 가족들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았다. 아니 아주 곱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도 부패로 얼룩지는구나 하고.

그런 그가 이제 세상에 없다. YS, DJ, JP로 대변되었던 3金시대는 김종필의 존재가 잊혀지면서 사실상 끝났지만 김대중의 서거로 제대로 종언을 고했다. 김대중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 아닌가. 군사 정권과 신군부의 압제에 저항했던 그는 모진 고문과 피살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아 민주주의를 부르짖었고, 그 결과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하는 대업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역주의를 타파하기는 커녕 자기의 상대방과 매한가지로 지역주의를 이용해 먹어 현재의 남남갈등의 장본인이 된 억울한,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줄줄이 이어진 친북논란, 그리고 87년 야당 단일화 후보에 불복하는 바람에 민주 정권의 출현을 5년 지연시켜 버린 그 사람 (만일 YS로 단일화 되어 당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우리나라 정치는 더 밝았으리라 본다. 뭐 역사에 만약은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볼 때 이러한 극단의 공과 과를 함께 짊어지는 것은 그러한 삶을 살기로 선택한 김대중이 스스로 지고 가야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 생각인데 김영삼은 김대중보다 좀 더 영리했던 것 같다. 적당한 타협을 통해 3당 합당을 한 뒤 마치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처럼 '하나회'라는 대한민국의 암적인 조직을 단번에 타파하고 노태우, 전두환을 법정에 세워 무기징역과 사형을 언도하지 않았나. 물론 그도 아들의 비리와 IMF로 인해 엄청난 정치력 손상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김종필은 김대중보다 좀 덜 영리했던 것 같다. 내각제라는 허상만 뒤쫓고 DJ와 손을 잡았다가 토사구팽 당해 결국 영원한 2인자로서 잊혀져가기 시작했지?)

3金의 삶이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함께 재조명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거의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국장으로 치러진 것을 보면,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든 좋아하는 사람이든 모든 국민들이 '영향력 있는 원로'를 잃었다는 것에 깊이 공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소위 극단적인 수구세력들의 말을 빌어 진짜 김대중이 빨갱이이고 대한민국을 전복시킬 목적으로 북한에서 교육받은 사람일지라 해도, 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그 모진 수난과 고초를 다 겪은 그의 위대한 발자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