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나도 애가 있었으면 좋겠다.]
Date 2009.09.19


오늘은 아버지의 생신날이자 사촌형 보민이 형의 혼인식이었다. 참으로 드라마틱하게도, 보민이 형의 혼인식 사실을 오늘 아침에야 알았다. 그것도 싸이월드 쪽지로. 세상에.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촌이 아닌데 연락 부재의 파탄적 결말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사촌의 혼인에 대한 정보조차 모르는 사촌. 그런데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이전 핸드폰 번호는 이미 소멸된 번호였고, 새로 바뀐 번호로 자동전환이 더 이상 되지도 않는다. 나는 싸이월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관심일촌이 아무도 없다. 따라서 어떤 글이 업데이트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 결과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학교에 갔다가 이 무슨 날벼락이냐며 교수님께 어렵사리 용서(?)를 구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동생도 용산에서 볼 일이 있었는데 급히 안양으로 돌아왔다. 난리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셔링 가디건에 페도라를 쓰고 나갔다가 검은 새틴 바지만 남겨둔 채 급히 흰 와이셔츠로 갈아 입었다. 양복저고리를 대체하고자 역시 검은 새틴 자켓을 입었다. 넥타이도 부랴부랴. 동생은 더 심각한 상황. 옷을 모두 갈아 입고 심지어 화장까지 손질을 해야 했다. 휴. 남자는 여자보다 이런 상황에서 더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니까. 혹여라도 일을 그르칠까봐 천천히 하라고 했다. 혹시나 급히 하다가 아이라인이 망가지면 시간 낭비 아닌가.

급히 지하철을 타고 어린이대공원 역까지 갔다. 혼인 장소는 송정교회. 역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고 가려고 했는데, 이거 왠일. 교회는 지하철역 출구에서 500m 정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본당 주변에 도착하니 다행히 식은 끝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세민이 형이 앞에서 하객 인사를 받고 있었고, 급히 들어가니 이제 막 축가가 끝나고 있었다. 어, 저기 고모 계시네 뒤에는 고모부도 계시네. 어이쿠 저기에는 영신이 누나 내외분과 아들이 있네. 지훈아, 당숙 아저씨 이제 막 왔어~ :)

이내 식이 끝나고 큰아버지, 고모, 고모부, 그리고 사촌들에게 인사를 했다. 늘 장난꾸러기 형같은 보민이 형은 어느새 혼인식의 주인공이 되어 있고, 나를 보시고는 매우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렇지 뭐, 연락이 전혀 닿질 못했는데 떡하고 와 있으니~ 아무튼 오길 잘한 것 같았다. 혼인식 친척 사진에 나와 동생도 당당히 얼굴을 박아 넣었다.

부계 친척들과는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 밥을 먹었다. 큰아버지는 전보다 더 건강하신 것 같고, 둘째 고모와 고모부는 외손자의 재롱을 보면서 희희낙락. 셋째 고모는 여전히 나를 '타블로'라고 부르신다. 최근 할머니의 자매분들이 할머니 부영아파트 근처로 이사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아차. 할머니에게 전화 좀 드려야지. 통 연락을 못 드렸네. 친척과 함께 밥 먹는 동안 화제의 중심인물은 단연 돌을 갓 지난 지훈이였다. 어찌나 귀여운지 처음 본 나한테도 재롱을 피운다. 아이고 미치겠다.

식이 끝나고 나서는 둘째 고모댁에서 완전 편하게 오랫동안 있다가 나왔다. 고모와도 길게 수다를 떨고, 중국 출장을 마치고 막 돌아온 영지누나와 저녁을 먹으면서 실컷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동생은 이런 만남이 처음이라서 신기한 모양이다. 내가 볼 때에는 동생을 영지누나와 자주 만나게 해서 많은 것을 익히게 해야 할 것 같다. 확실히 영지누나는 좋은 롤 모델이 되니까.

아무튼 그룹 미팅과 조장 모임을 모두 반납하고 급히 간 혼인식 치고는 참 좋은 시간이었다. 혼인식 자체도, 그리고 고모댁에서 보낸 시간도 참 좋았다. 굳이 오늘의 일기 제목을 저렇게 뽑은 것은, 혼인보다도 '지훈이'가 너무 기억에 남아서 그랬던 것이지만... 아무튼 그런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 아버지와 보민이 형이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리고 사랑해요♡♡♡ 아버지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번듯하게 숨쉬고 있어요 :) 그리고 보민이 형 정말정말 축하해요~! 아름다운 가정에서 형수님과 함께 즐겁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우리 세대 중에서 다음 혼인 바통을 이어가야할 남자는 다름 아닌 내가 되었다. 오 이럴수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