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퍼질러 지낸 추석]
Date 2009.10.03


퍼질러 지낸다는 말이 표준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구글에 가서 물어보기도 전에 그냥 쓰고 잘란다. 아무튼 이번 추석 연휴는 정말이지 쉼의 연속이었다. 첫날은 실컷 컴퓨터를 두들기며 게임을 하느라, 둘째날은 할아버지댁에서 실컷 먹고 자고 TV보느라. 올해 초 남아공에서도 이렇게 안 보냈거늘 이번 추석명절 때에는 정말 하나도 근심 걱정 없이 너무 편하게만 지냈다.

사실 이랬던 날이 최근까지 단 하루도 없긴 했다. 내겐 휴식의 주말이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남들은 토요일이 쉬는 날이요, 주일이 곧 노는 날이라고 했지만, 그건 진짜 남들의 이야기였다. 정말 원 없이 잤다. 심지어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사실 논문을 볼 요량으로 실험실에서 퇴근하기 전에 몇 편 점찍어 두었지만 이번 연휴 때에는 결국 놀기만 했다. 아이고, 그래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다만. 뭐, 제대로 쉬는 것이 더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 수밖에 없지. 아니, 생각해보니 나는 화려한 휴식의 기쁨을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이렇게 퍼질러 놀고 하루를 보내 놓고서도 내심 아쉬워하는 걸 보면 말이다.

추석인데도 보름달조차 못 봤다. 개천절인데 태극기조차 집에 달지 못했다. 어째 10월 3일이 가진 다른 의미들은 쏙 빠져 버리고 오직 내게 남은 것은 달력 속 빨간 글씨 뿐인 것 같다. 그래도 낸들 어쩌랴. 감기몸살에 걸려 고생하는 나로서는 별 도리가 없다.

아참. 뒤늦게 밝힌 건데, 나 감기 걸렸다. 그제 실험실에서 퇴근할 때 코가 자꾸 목 뒤에 걸려 밥알이 걸린 것처럼 불편하여 내내 코를 헹~하니 풀면서 괴로워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그 다음날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둔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시월이 되면서 갑자기 차가워진 새벽 공기에 그만 감기가 도진 것 같다. (사실 실험실 공기는 좋지 않은데다가 차갑기까지 하다!)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열이 나기까지. 하지만 열이 나면서 코가 풀리는 것을 보면 지금 감기를 이기기 위한 몸의 대반격이 시작된 모양이다. 오늘 할아버지 댁에서 정말 잘 먹고 편히 쉬었으니까 앞으로 며칠만 더 참고 따뜻하게 지내야지. 아이고, 이게 왠 고생이니 이게.

오랜만에 외할머니의 수지침을 맞아 보았는데 한결 나아졌다. 할머니가 요즘은 눈이 잘 안 보이셔서 돋보기 아니면 가까운 거리를 보기 힘들어 하시는데 아무튼 대충 놓은 침이라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머리 부분에 수지침을 맞았을 때에는 중지가 화끈거리는 것이 거기서 열이 막 나는 듯 했다.

아무튼 이제 추석 연휴는 끝! 주일은 휴일이 아니니까ㅡ. 달력에서 주일을 까맣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일기를 마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