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화학 조교]
Date 2010.12.16


학교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서는 자주 화학부 조교 및 교수님을 비방하는 글이 올라온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화학부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는 않은 듯 싶다. 오늘 봤던 글에는 채점을 엉망으로 한 조교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저번에는 악명 높은 화학실험 조교들의 본명이 거론되더니 화학부는 예전부터 늘 그래왔다는 댓글이 늘 주류를 이룬다.

나도 4학기째 조교를 하고 있는데 학부 때 가졌던 마음가짐처럼 정말 완벽한 조교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숙제와 시험 채점은 생각보다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말 독특하고 기막힌 답안들을 접하다보면 그런 난삽한 논술과 함께 채점 기준마저도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리다보면 다시 한 번 재검을 해서 채점을 다 뜯어고치고 싶지만 시간도 없고 오히려 소모적일 뿐이다. 아, 이거 생각보다 너무 어렵네. 숙제와 시험은 왜 그리도 많은지. 내가 학부생 때 만났던 그 수많은 조교들이 수십명이 제출한 숙제들과 시험 종이뭉치에 쌓여 그 일들을 묵묵히 감수해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학부생들은 대학원생들의 삶을 몰라도 무척 모른다.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선배들에 대한 몰이해가 정말 차고 넘쳤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조교질을 하면 돈을 주지 않느냐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채점하는 데 10분 정도 걸리지 않냐는 말에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분하거나 섭섭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학부생일 뿐이고 그 사람들이 대학원생들을 이해해준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결국 조교와 학생 사이의 갈등은 한 번 보고 나면 다시는 안 볼 고객과 업자의 으르렁댐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결국 손님이 왕인 것이고, 그렇게 인정해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따라서 조교들은 항상 저자세로 학부생들을 우대해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격노한 조교들이 대학원생의 삶이 너무 바쁘고 힘들다, 너네들 채점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조교한다고 돈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내 시간 강제로 빼앗겨가며 이 짓을 해야 하는데, 이런 (틀리지 않은) 말들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한다고 해서 득될 것도 하나 없다. 어차피 학부생들은 우리를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고, 우리도 학부생들의 입장이 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엄밀히 말해 그건 조교들의 concern이지 학생들이 신경쓸 입장은 아니다. 학부생들은 단지 수업 진도 진행의 편의성, 채점의 공정성 및 정확성 등등 서비스적인 것만을 요구하지 조교들의 삶이 어떤지는 관심도 없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조교 = 수업에 헌신하기 위해서 인센티브를 받고 임명된 종사자라는 생각이 강하다.).

어차피 서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갈등이라면 나이가 좀 더 많고 배운 것이 있는 조교들이 먼저 낮아져야지. 그게 가장 원만하고 바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딸들이 어머니에게 반항하고 온갖 상심할 만한 일들을 저질러도 어머니는 이런 말들을 하신다. '너도 너같은 딸 낳아보면 알게 될거다.' 어머니는 절대로 너를 키우느라 너무 어렵다, 나도 내 감정이 있다, 넌 정말 키우기 힘든 애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지 않는다. 조교들도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내 말은 그게 옳다 그르다는 게 아니다. 원만한 해결을 위한 현명함을 갖추자는 것이다. 어차피 한 학기가 끝나면 서로 관계가 없는 무상한 사람일 뿐이다. 머리를 맞대게 될 그 시간동안에만 현명해지자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화학 조교들만 이렇게 욕을 먹냐고? 그건 당연하다. 화학 과목만큼 조교와 학생간의 상호 작용이 긴밀한 과목이 없기 ??문이다. 그건 수업을 충분히 고르게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