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아니, 성수야. 너는 왜 물리화학 랩으로 안 가고 고분자 랩에 갔어?'


왜냐하면 나는 화학과 물리를 함께 전공했고, 때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물리화학 ㅡ 그 중에서도 이론 계산 쪽으로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지레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2007년도에 일기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듯이 (워낙 옛일이지만 이 게시판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ㅋ) 나는 분명 물리와 화학을 공부했지만 여기서 배운 것들을 재료에 적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택한 재료는 바로 고분자였다.


물론 내가 고분자 랩에 왔다고 해서 고분자를 전문적으로 잘 다루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고분자화학보다 물리화학이나 고체물리학에 대해 할 말이 더 많다거나 혹은 더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분자화학에서 다루는 합성 파트는 내겐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대학원에 와서 이쪽 분야를 더 공부해보고 싶긴 했지만 랩에서 지향하는 바가 있고, 또 내가 그 모든 것들을 다 감당해낼 수 있는 능력자는 아니기 때문에 합성에 대한 공부와 도전은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신 내가 기존에 잘 알고 있던 물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태양 전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게 되었고 (사실 대학원에 들어올 때 제출했던 학사 논문 및 그 때를 전후해서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가 바로 태양 전지 분야였다.) 또한 새로운 연구 분야를 찾게 되었고, 무한한 도전정신과 기쁨을 누리면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물리학 공부를 했던 것이 전혀 쓸모 없어진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더 큰 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어떤 연구를 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고분자 랩에서 배운 여러 물리, 화학적 지식과 실험 기술들은 미래의 나를 다져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사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하는 재료화학 연구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화학이 아니며 공학자 마인드를 가진 그런 '급 낮은' 화학을 하고 있다고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선과 비아냥에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물리학부에서 숱하게 실험 물리학과 계측을 하찮게 여기는 투의 그 오만한 분위기를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화학자들의 편견은 약과에 불과하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긍지와 믿음을 가지고 계속 연구할 것이다. 학문에 경계는 없다. 이젠 누가 깊게 파느냐의 문제를 뛰어넘어 누가 넓게 파느냐의 문제에도 골몰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분자는 충분히 매력적인 물리학이자 화학이자 소재요 공학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