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집앞에 있는 성공회 교회에서 드리는 전례인 감사성찬례에 참석했다. 삼봉프라자 지하 1층에 있는 대한성공회 안양교회는 여느 소형 상가 건물 교회나 다름 없었다. 교회 입구에 있는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히 있었고 여기서 슬리퍼로 갈아신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리던 차에 화장실에서 나오시는 나이 지긋한 한 할머니 신도분이 나오시기에 간단하게 여쭤봤더니 무척 반기시며 안으로 인도하셨다.

 

회장님이라고 불리는 어떤 중년의 신사분이 내 옆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 말씀해 주셨다. 예상대로 감사성찬례가 열리는 회당 전체의 연령대는 매우 높아 거의 50대 이상이었고,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은 기껏 해야 열 명도 채 안 되어 보였다. 11시 감사성찬례가 주 전례임에도 불구하고! 그 신사회장님은 나를 위해 공동번역성서 ㅡ 성공회와 정교회는 아직까지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번역을 주도했던 개신교계와 천주교는 각자 번역한 다른 성경을 사용한다. ㅡ 를 펼쳐주셨고 성공회 찬양집과 감사성찬례 기도서를 같이 놓아주셨다.

 

순서는 로마 가톨릭의 미사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고 이미 여러 차례 사전 정보를 얻었기 때문에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음률을 넣어 집전자가 기도를 하는 것과 회중과 주고받는 말들, 그 모든 것들이 퍽 익숙했다. 게다가 이날 감사성찬례 때 부른 찬양은 장로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찬양집에도 실려있는 아주 익숙한 찬양이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약간 달랐지만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를 빼고는 다 익숙한 구절이었다.

 

로마 가톨릭의 미사와 아주 크게 다른 점은 성만찬(=영성체) 시 단형이 아닌 양형영성체를 실시한다는 것인데 또 동방정교회와는 달리 웨이퍼 형태의 얇은 빵을 성작에 담긴 포도주에 신도들이 직접 적신 뒤 먹는다는 것이다. (동방정교회 신도들은 성직자가 성작에 담긴 빵과 포도주의 혼합물을 숟가락으로 떠 주는 것을 받아 마신다.) 예전에 뉴욕의 성공회 교회에 갔을 때 실려 있던 책자에서 '성공회 신자가 아닌 기독교인도 성만찬에 참석할 수 있나요?'라는 책자를 자세히 읽었던 기억이 났다. 거기서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면 어느 누구든지 이 거룩한 예식에 초대하고 환영한다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의 영성체는 거부 ㅡ 그리고 어차피 로마 가톨릭은 나의 장로교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ㅡ 했으나 성공회의 영성체에는 함께 하기로 했다. 거기에는 신자회장이었던 신사분의 권고도 있었다.

 

성공회 감사성찬례는 로마 가톨릭 미사와는 달리 집전자의 설교가 보다 길고 좀 더 중시된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 개혁에 따른 말씀 중시의 분위기 영향 때문인 듯 싶다. 안양교회의 담임사제인 미카엘 신부는 꽤나 유쾌한 성격을 지닌 설교가였는데, 마치 개신교 예배에서나 볼법한 회중들의 '아멘' 화답을 중간중간 요구하기도 했다. 전통적 전례 시간과는 달리 설교 때에는 그냥 우리가 흔히 보는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처럼 말을 했다. 이 날은 성령강림주일(=오순절)이었기 때문에 성서정과에 따라 일치하는 성경을 봉독하고 그에 맞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무튼 인상 깊었다.

 

신자회장인 아까 그 신사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중간중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신실해 보인다면서(!) 보통 청년들이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데 참 좋아 보인다고 칭찬하셨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은, 그 분은 서울대 미생물학과 72학번이라는 것이었다. 어쩐지, 내가 화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라고 얘기할 때 '허허, 난 미생물학이었는데'라실 때부터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어. 그 분은 후배를 만났다며 매우 반가워하셨다.

 

밥을 먹고 가라고 권유하셨지만 나는 내가 봉사하는 본 교회의 예배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일찍 나왔다. 사제님과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신자회장님과도 몇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내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되겠기에 바로 버스를 타고 교회로 향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성공회 교당을 다시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나는 성공회가 지향하는 Via Media (중용) 정신에 대해 깊이 존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 미카엘 신부는 설교시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가 성공회라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공회는 그냥 그리스도를 어떠하게 믿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지요. 이 주머니에 있는 사람들과 저 주머니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것이 아니고 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지만 믿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