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부산대학교 고분자공학과의 김채빈 교수님의 초청으로 같은 센터의 조세연 박사님과 함께 부산대학교 대학원 수업에서 세미나를 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소되자 이제 학회나 세미나 초청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어디서라도 불러주시면 OK. 완주에서 부산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2시 반쯤 부산에 닿았고 우리는 수업 시작 전에 화공관의 김채빈 교수연구실 ㅡ 생각보다 넓어서 깜짝 놀랐다! ㅡ 에서 여러 교수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세미나는 3시 반부터 시작했는데 전반부는 조 박사님이, 그리고 후반부는 내가 담당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어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코로나19로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강의실에 수업을 들으러 한가득 모인 학생들을 보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아, 이게 얼마만인가?


사실 이번 발표자료는 다소 심혈(?)을 기울여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해 보았다. 어차피 강의를 들을 사람들 대부분은 대학원생일테고, 따라서 자신들이 연구하는 주제 외의 내용을 깊이 알 가능성이 낮으니 (혹은 알려고 할 의지가 낮을 수도 있으니) 내 연구 내용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해봐야 남는 것이 별로 없을 터. 그래서 최대한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담고, 연구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과감히 생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곧


1) 나는 재생가능한 소재를 화학적으로 기능화해서 새로운 고분자/탄소소재를 만들었다.

2) 고분자화학의 큰 특징은 분자 수준에서의 구조 변화가 직접 느낄 수 있는 거시적인 물성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두 사항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학생들이 싸이올-인 중합(thiol-ene polymerization)이 무엇인지, 아이소소바이드(isosorbide)가 무엇인지는 기억에 남지 않더라도 '아, 김성수라는 박사는 저런 생각을 가지고 실험을 수행했구나.' 정도는 기억에 남게 하길 원했다.


그리고 템플릿도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보통 세미나 발표 슬라이드는 상단 제목, 그리고 그 아래에 연구 배경이나 결과 가상의 사각형들로 구성된 틀 안에 적절히 배치되는 형태로 구성되는데, 최근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다보니 정지된 사각형 슬라이드 페이지 안에 정적으로 글과 사진이 '배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는 것이었다. 이건 과거 수업 시간에 전지에 글씨와 그림을 붙여서 만든 도표(=괘도)를 걸어서 넘겨가며 설명하는 것이라든지, OHP를 통해 투명 필름을 바꿔가면서 설명하는 것이라든지, 이런 지극히 고전적인 발표 방식을 파워포인트로 답습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음으로써 슬라이드를 구성하는 컨텐츠가 동적으로 움직이면서 가끔은 슬라이드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였고,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하지 않는 슬라이드에서는 상단 제목 바를 과감히 없앴다. 그러다보니 마치 애니메이션 영상을 라이브로 송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는데, 어차피 요즘 학생들은 유튜브 시청에 훨씬 익숙할테니 이러한 '영상 쇼' 방식으로 정보를 취득하는 데 전혀 거부감이 없을테니 이런 방식이 몰입도가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표 후 설문조사를 돌린 것은 아니지만, 이미 발표 중간중간 청중들을 살펴보면서 어느 정도 이런 변화된 방식이 학생들에게 '먹히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몇 학생들은 강연 후 발표 잘 들었다며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45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도 집중해서 잘 들어준 것이 오히려 강연자로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세미나 이후 첫날은 김채빈 교수 실험실, 그리고 다음날은 유기소재시스템공학과의 이재근 교수 실험실을 둘러보고 각 실험실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되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맛볼 수 있는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두 분 다 친절히 랩을 구경시켜 주시고 좋은 말씀들을 해 주셔서 부산에서 극진히 대접받은 것같아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19기 기승을 부렸던 지난 2년동안 고등학생들을 상대로만 강연을 진행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니 나도 모르게 좀 흥분(?)했던 것인지 목이 칼칼해진 느낌이었다. 비록 내가 강연을 하며 먹고 사는 연사나 교원이 아니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가끔씩 찾아오는 강연의 순간이 꽤나 강한 희열을 맛보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도 이제 거의 사라졌으니, 앞으로도 자주 이렇게 '내가 아는 바'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