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실험실 선배였던 형기누나 혼인식이 광화문 근처 예식장에서 있었다. 예식이 2시부터 시작이었기 때문에 오전부터 예배와 유아부 봉사를 마친 뒤 교회에서 곧장 바로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간편한 차림으로 갔다고 생각했는데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이건 뭔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간단히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오늘은 중부 지방 폭염 예보가 내려진 날. 오후 최대 34도까지 수은주가 올라간다니 이거 말 다했다. 게다가 내가 가고자 하는 지역은 서울의 도심 중의 도심인 광화문 세종로란 말이다.

 

안양역까지 가는 데도 벌써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앉자마자 픽픽 쓰러지고 있는 나 자신이 감은 눈속에서도 마치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이는 듯 느껴졌다. 이것은 분명 맥추감사절을 기념하는 성찬식의 포도주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평소처럼 졸린 것도 아니다. 대체 이 무기력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예식장에 찾아가서 형기누나를 뵙고, 또 거기서 만난 정희형과 여자친구분과 점심을 같이 먹고, 예식에 참석한 뒤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벌써 시간이 3시. 마음같아서는 어디 시원한 자리에 앉아서 커피라도 한 잔 나누고 싶었지만 오늘은 부활절 칸타타 재연 리허설을 우리의 형제 교회인 안양일심교회에서 4시부터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곧장 빠져나와 잠깐 교보문고에서 러시아어 교본을 하나 산 것을 제외하고는 무작정 안양으로 향하는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맡겼다. 내릴 역을 지나칠까봐 거의 선잠을 자다시피 하면서 누더기같은 몸을 이끌고 무작정 안양일심교회로 향했다. 아스팔트는 작열하는 태양볕 아래 이글거리고 있었고 무심하게도 하늘에는 햇빛을 가려줄 만한 구름조차 이미 넘어가고 없었다.

 

안양일심교회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본 은혜가 '너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 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법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나는 지쳐 있었다. 이건 단순히 졸리거나 배고파서가 아니다. 진정 더위를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힘든 티를 낼 수도 없는 리허설 자리. 리허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왠지 더 악착같이 부르짖으며 빌라도 연기를 해낸 것 같았다.

 

이어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성원아파트에 갔지만 거기서 별다른 것을 할 수는 없었다. 오직 시원하게 통풍이 되는 거실 바닥에 누워 쓰러져 있는 것이 전부였다.

 

진짜 덥다는 말을 입에 달면서 집에 왔다. 아참, 교회로 가는 길에 처음 매미소리를 들었다. 매우 많이 말해서 지겹게 느껴지기도 할 말이지만 오늘은 진짜 더운 날이었다. 하긴 오늘로서 2013년의 절반이 꼭 지난 것이니 이제는 한창 더울 계절이긴 하다. 그래 나도 안다. 이게 28번째 여름 아닌가. 하지만 우와, 이건 벌써부터 너무 지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