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주가 오기 전에 머리를 깎아둬야겠다는 생각으로 집 근처에 있는 미용실에 갔다. 역시 (나처럼) 미리미리 일찍 머리를 깎지 않는 남자들 ㅡ 월요일 출근이 임박한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집 밖으로 나온 모양인지 남자 여럿이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도 그냥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그 옆에 앉아 미용실 주인의 다음 차례 눈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미용실 주인을 아는 분이 옆 자리에 앉아서는 전화를 주고받더니 이내 미용실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예전에 만나던 아가씨 언급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하루는 미용 가위를 선물해 달라고 했다나? 기껏 해봐야 몇 만원 하는 줄 알았던 미용 가위가 알고 보니 수십만 원하는 고가의 장비라는 것을 알고 기겁하여 꺼지라고 했다는 일화를 뇌까리듯 말하였다. 미용실 주인은 웃으면서 미용실 용품이 생각보다 비싼데 자기는 미용 가위를 열 여섯 자루 사기도 했다는 둥, 바리깡도 싼 건 50만원이라는 둥, 일부 비싼 가위는 2백만원도 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것은 이 2백만원짜리 가위는 대체로 일본산인데, 그 사람들이 검(劍)을 잘 만드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날 선 것은 품질 좋게 만든다고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국산 가위는 떨어뜨리지 않았음에도 날이 나가는 경우가 잦다고 말한 것으로 봐서는, 일제 가위는 떨어뜨리는 물리적 타격이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는 한 머리를 깎는 행위만으로는 쉽게 날이 무뎌지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편이 옳겠다. 이 말을 들은 아저씨도 맞장구를 치며, 일본산이 자동차도 좋고 시계도 좋고 칼도 좋고 등등 다 좋다고 하셨다.


이 대화를 듣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 나라의 경제와 수준을 단숨에 끌어올릴 마법과 같은 선도적인 기술 하나에 과도하게 환호하고 있다. 특정한 분야의 기술이나 산업이 언론에서나 혹은 우리 주변의 모둠에서 항상 주목받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일본이 지금의 일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 과연 예전부터 반짝하고 빛나는 놀라운 최첨단 기술이 때마다 있어서였을까? 물론 그러한 기술들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황무지에서 발현되었을 리는 없다 ㅡ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기술을 갈고 닦았던 무명(無名)의 선각자들이 낳은 평범하지만 위대한 유산을 배경으로 싹튼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 대한민국이 세계 일류 국가를 꿈꾼다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해내지 못한 실로 꿈같은 기술을 실현하는 것일까? 물론 그런 기회가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기 위한 배경은 다름 아닌 평범한 기술과 사람들의 완숙에 달려있는 것이다. 일정한 피치를 두고 쉽게 망가지지 않는 나사를 만드는 기술, 압력을 강하게 가해도 잘 파손되지 않는 유리 기구의 생산, 완벽한 품질의 좋은 물리화학적 물성을 가진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 공정 제어, 폐수 하나 새어나가지 않게 완벽하게 제어하여 정화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개발과 유지 등등. 이런 기본적이고도 부품과 제품, 시스템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요소 기술들이 숙련되지 않고서 무슨 최첨단 기술을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사상누각(沙上樓閣)아닌가?


하물며 해방 후 8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미용실 가위조차 일본 가위의 품질을 따라잡지 못하고, 여전히 일제 품질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다. 앞서 나가는 반도체 기술의 위용에 눈이 가려진 탓도 있겠지만, 우리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직 가위조차 우리는 제대로 못 만든다고. 물론 내가 연구하고 있는 탄소섬유(炭素纖維) 얘기를 하자면 이런 한탄과 탄식은 끝도 없을 지경이겠지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