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병력이 있는 교사의 칼부림에 의해 8세 초등학생이 안타깝게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제지간(師弟之間)의 폭력이나 위력에 의한 직·간접적 살인 사건은 있었어도, 정신질환에서 기인한 '묻지마 살인'이 아무 관련도 없는 여아의 사망으로 이어진 사건은 정말이지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사건이다. 당장 교권 신장에 놓여 있던 학내 인권 운동의 무게추는 한동안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현재 돌봄 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관리·감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이나 기타 병력에 대해 수많은 시민들이 굉장히 민감해할텐데, 이것이 사회 전반에 불러 올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어디 문제를 일으킬 직업이 교사 뿐이겠는가? 직장 내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다짜고짜 칼부림을 할 지 어떻게 아는가? 나와는 관계없는 저 아래층에서 일하던 어떤 정신 나간 이가 방화를 저질러 건물에 있는 수많은 인명을 위기로 몰아넣을 지 어떻게 아는가? 과거에는 이런 의심을 품는 자가 오히려 망상(妄想)에 사로잡힌 이라고 손가락질 받았겠지만, 온갖 흉흉한 사건이 가득해지니 이런 의심이 과연 부당하다고 누가 콕 집어 얘기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전에도 온갖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의한 우발적 혹은 계획적 범죄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대부분 흉악한 범죄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기 쉬운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일정한 직업이 없거나 불우한, 잔인하거나 사회성이 결여된, 심지어는 외양(外樣)이 썩 준수하지 못한 이들. 하지만 이번 범죄는 피의자가 다른 직업도 아닌 '선생님'이라는 데 있다. 돈벌이의 안정성과 교육의 전문성을 어느 정도 갖춘, 그래서 신붓감으로 항상 거론되는 교사가 무슨 이유로 학생을 죽인단 말인가? 학생을 죽일 이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심지어 이유가 없이 학생을 죽인단 말인가?


게다가 우리가 기억하는 걸핏하면 뺨부터 때려대는 일부 몰지각한 아저씨 선생님이 아닌 '여자 선생님'이 이 사건의 피의자라는 것에서 모두들 놀라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의 유성호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남성의 폭력성은 '완력'에서, 여성의 폭력성은 '관계'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했다. 여성이 휘말린 각종 사건을 들여다보면 손찌검을 하는 등의 신체적 상해를 가하는 것보다는 무리 짓기를 이용한 따돌림, 괴롭힘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악마화된 여성상'을 떠올릴 때면, 신체적 위해를 통해 생명줄을 잡고 비트는 여성이 아닌 이간질, 모욕, 시기 등을 통해 다른 이의 사회적 생명을 시들게 만드는 여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피의자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후자가 아닌 전자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렇듯 '여성 교사'가 '여성 초등학생'을 이유 없이 죽였다니,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유난히 이번 사건을 보며 '이제는 사람 참 못 믿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결코 과한 반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래 언제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무방비 상태로 크게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은 해외 우범 지대를 여행할 때나 느낄 법한 막연한 가능성이었지, '학교'와 같은 친근한, 아니 친근해야만 하는 장소에서 당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과거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화장실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뒤 많은 여성들이 '폭력적인 남성 위주의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살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하며 거리에 쏟아져 나왔는데, 지금 그와 비슷한 막연한 불안감이 사회 전반을 엄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그 사건과 이 사건 모두 어떤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의 칼부림이었다. 어찌보면 이 사건은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초점을 '젠더'가 아닌 '정신질환'으로 대치(代置)하게 만든 사건이 아닐까 싶다. '여자라서' 사회에서 '남자에게' 위협을 느끼는게 아니라 '멀쩡한 시민이라서' 사회에서 '멀쩡하지 못한 이들에게' 위협을 느낀다는 생각?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질환의 여부나 정도를 가지고 어떤 이가 특정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신질환을 앓는다고 해서 관련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과거 판례를 보더라도 이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으나, 이미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 15조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2018년 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연평균 약 6,000명의 의사가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고, 이들이 연평균 약 2,000만건의 진료와 수술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 국회의원의 발언을 두고 대한조현병학회에서는 부적절한 언행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https://www.medifonews.com/news/article.html?no=195473) 정신적 장애를 포함한 모든 장애를 사유로 하는 어떠한 차별도 금지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장애인의 노동권을 인정한다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국내외 법과 각종 선언문은 우리가 정신질환자들의 노동권을 박탈할 권리를 향유하지 못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신질환의 여부나 정도를 첨예하게 따져들면서, 만일 자신의 이익에 위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면 관련 질환자들을 각자의 직업에서 철저하게 배제시키려는 움직임이 사회 각 곳에서 일어날 지도 모른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으로 '측정'과 '분류'가 세부적으로 더 가능하게 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갈 것이다. '멀쩡한 나의 노동권'과 '멀쩡한 나의 생명권'을 지키겠다는데 이 개인적, 공동체적, 사회적 요구를 국가가 이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움직임의 결말은 전체주의(全體主義)와 다를 바 없으며, 가타카(GATTACA)라는 영화에서 본 음울한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모두들 기억해야 한다. 내가 강하게 믿고 있는 한 가지 생각은, 우리 모두가 작든 크든 어떤 신체·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상 '멀쩡'하지 않다. 세상 사람들의 특성은 결코 정규 분포(normal distribution)를 그리고 있지 않으며, 정말 다양한 특성들이 수차원에 걸쳐 넓게 산개(散開)해 있을 뿐이다. 지구에 사는 수십 억 인구를 표본으로 하여 중앙값을 잡아 어떤 표준을 설정할 수는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표준에 해당하는 진짜 '보통 인간'은 얼마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다시 역설적으로 그렇게 다양했기 때문에 때때로 변하는 자연 및 사회 환경에서도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계속 살아남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절대로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을 배제함으로써 '정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러 집단을 배제하면 마치 주변부의 더러운 찌꺼기가 제거된 말끔한 중심핵만 남아 온전한 사회가 지속될 거라고 착각하지만, 실상 그것은 마치 골다공증에 걸린 뼈와 같아서 외부 충격에 의해 으스러지기 쉬운 위태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비슷한 사건으로 인해 또다른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렇기에 법적 후속 조치를 응당 행하여야겠지만, 우리 사회의 생각이 건강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될 것이다. 무척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