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간 완주군 내에 있는 축구교실에서 매주 한 두번씩 수업을 들으며 축구공에 대한 두려움(?)을 좀 떨쳐내긴 했는데, 그럼에도 사십 평생 축구공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이력은 어디 가지 않아서 여전히 공을 다루는 데 애로사항이 참 많았다. 그래도 언제까지 개별적인 훈련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난 주 목요일에 연구원 내 축구동호회 정기모임에 나갔다. 참고로 정기모임은 유난히 더웠던 7, 8월의 여름 동안 쉬었다가 9월이 되어서 재개했고, 지난 주 목요일이 활동 재개 후 첫 정기모임이었다.


여전히 공이 내 컨트롤 하에 놓이면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고, 빨리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그래도 나름 조금씩 공을 몰아보기도 하고 이곳 저곳으로 패스도 해 보았다. 상대방의 패스를 끊어보려고 열심히 발을 뻗기도 했고, 내습하는 공격수의 진로를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뭐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간간이 사람들의 나지막한 칭찬이 들리곤 했다.


그러다가 중반 어느 즈음에 기회가 찾아왔는데, 어쩌다가 나도 모르게 상대편의 골 에어리어 측면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은 내게 전달되었고, 나는 상황을 보니 중앙에서 우리 편 학생이 접근하고 있기에 그쪽으로 공을 약간 띄워 전달해 주었다. 놀랍게도 학생은 이마로 그 공을 쳐서 밀어넣었고, 골키퍼의 허를 찌른 헤더는 골망을 흔들었다. 인생 최초의 어시스트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내가 해낸 일이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그저 헤벌쭉 웃으며 코트를 쏘다닐 뿐이었다. 사람들도 무척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힘을 받아서 나머지 시간동안 더 힘내서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경기 막판, 또 나도 모르게 상대편의 골 에어리어 근처까지 흘러 들어왔는데, 슛이 난사되는 가운데 골키퍼가 겨우 막아낸 공이 골대 근처로 굴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골키퍼가 손으로 잡을 것 같았는데, 왠지 빠르게 달려가면 내가 컨트롤을 따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고, 나는 근처에서 인사이드로 공을 톡 밀어넣었다. 살짝 골키퍼의 손을 밟아 미안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아무튼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어시스트와 함께 마지막 골을 기록한 순간이었다. 그 당시 그라운드는 조금 기묘한 침묵에 빠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혹시 내가 실수를 했나, 골을 넣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나 좀 혼란스러워했다. 아마도 다들 내가 거기서 튀어나가 골을 넣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 같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이렇게 축구화를 신고 뛰어 본 내 인생 두 번째 축구 경기가 1골과 1어시스트의 빛나는(?) 기록과 함께 종료되었다. 뭐 솔직히 얘기하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같은 편 사람들 (및 상대편 사람들)이 축구에 젬병인 나를 배려해 준 덕분에 즐겁게 경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래도 축구를 배워왔던 게 영 쓸모 없지는 않았구나, 적어도 축구공이 더 이상 두렵지는 않게 되었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 사십에 시간과 돈을 들여 축구를 배운다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우스운 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아주 큰 힘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수많은 즐길거리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축구는 내가 극복하고 싶었던 '남자들의 무언가' 중 가장 거대한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이것을 어렸을 때 능히 이겨낼 수 있었다면 내 삶은 지금과는 꽤나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을 부정하고 싶거나 바꾸고 싶지는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2025년에 축구를 본격적으로 해 보았다는 것이고, 전보다는 확실히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앞으로도 이를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념비적인 변화다. 올해 정말 인생을 바꿀만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내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