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KIST 전북의 짐랫 박사의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언제부턴가 달리기에 심취하던 짐랫 박사는 모두의 앞에서 달리기의 이점을 찬양하더니 언제부턴가는 하루에 20 km 까지 뛰는 만행(?)을 벌여왔다. 그러더니 그는 8월부터 줄곧 10월 중에 적당한 날을 잡아 무조건 함께 10 km를 뛰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얘기했는데 ㅡ 왜 10 km 를 뛰어야하는지 이유는 없었다 ㅡ , 나를 포함한 역도부원들은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D-day는 10월 16일로 정해졌고, 나와 짐랫 박사를 포함한 총 6명의 연구원들은 완주군의 만경강변을 따라 5 km 정도의 경로를 두고 왔다갔다하여 10 km 정도를 달리기로 하였다. (짐랫 박사는 이미 그 코스를 몇 차례 미리 다녀봤다.) 이거 준비한답시고 내 인생에 살 예정도 없었던 각종 도구들 ㅡ 헤어밴드, 러닝벨트 ㅡ 을 구매했다. 


아니 기껏해봐야 운동 마치고 트레드 밀에서 4 km 달린 게 전부인데 10 km를 달릴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7~8 km 까지는 무리 없이 달릴 수 있으리라 예상하긴 했다. 왜냐하면 입으로 숨 쉬지 않고서도 트레드 밀에서 4 km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마 이 정도 수준이라면 똑같은 거리를 한번 더 달려도 힘들지언정 멈추지 않고 달릴 수는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한 뒤 2~3 km를 더 달린다는 것은 아주 큰 고통일텐데...? 게다가 독일에서 걸린 감기로 인해 이따금씩 기침이 나오고 늑골에도 가끔 통증이 느껴지는 이 상황에서 달리는 건 무리가 아닐까? 뭐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서 지정된 시간에 만남의 장소인 만경강변으로 향했다. 거기서 만난 우리의 러닝 크루(running crew) 멤버들은 간단히 몸을 풀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생각보다 잘 달렸다. 짐랫 박사가 늘 말하길, 트레드 밀에서 달리는 것과 야외에서 트랙을 따라 달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야외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달릴 때 더 빠르게 달리게 된다고 했다. 그게 맞는 말이었다. 10.15 km을 달렸는데, 1시간 5분 정도 걸렸으니, 1 km를 달리는 데 6분 26초가 걸리는 페이스였다. 이를 거꾸로 표현하면 나는 9.32 km/h의 속력으로 달린 것인데, 이때까지 살면서 트레드 밀에서 저 정도의 속도를 고정한 채 1시간 이상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경험도 없었는데 이렇게 달릴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간 3~4 km 정도를 트레드 밀에서 7~8 km/h의 속력으로 달리는 게 나름의 훈련이 되긴 했더라, 그리고 야외에서 달리면 실제로 트레드 밀에서보다 더 잘 달리더라.. 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무튼 중간에 지쳐서 멈추지도 않았고, 매 km 당 적절한 수준의 속도로 계속 달렸다 ㅡ 오히려 마지막 2 km 지점부터는 속도가 더 붙기까지 했다. 완주하고 나서 '나이키 런클럽' 앱을 통해 달린 기록을 보니, 이렇게 달릴 수 있었다는 게 무척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짐랫 박사의 암시(?)에 굴복한 것 같아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모든 멤버들이 10 km 완주에 성공했고, 우리는 이 업적을 자축한 뒤 읍내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따뜻한 국밥을 원없이 들이켰다. 다 뛰고 나니 땀이 스산한 가을 저녁 바람에 식으면서 생각보다 너무 추워져 당황했는데, 국밥집에서 뜨뜻한 국물을 마시니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끝나고 운전하고 집에 갈 때는 오랜만에 자동차 히터를 틀어 놓아 몸을 따뜻하게 데워 놓았고, 더운 물로 샤워한 뒤에는 생강차를 끓여 마셨다. 


일단 생애 첫 러닝 치고는 꽤나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으니, 앞으로도 관심을 놓지 않고 꾸준히 잘 달려봐야겠다. 이 역시 짐랫 박사의 암시(?)에 굴복한 것 같아 적잖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달리기는 혈액순환과 체중 조절에 매우 효과적인 유산소 운동이 아니던가? 매주 두어 번씩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달리기를 병행한다면 건강에 무척 좋으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무리 없이 잘 달리게 되어 무척 기쁘고 또 잘 이끌어 준 짐랫 박사와 달리기 멤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