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연필을 깎아봤다. 항상 샤프(영어로는 mechanical pencil이라고 해야 맞다나? 흠...)로 흑연가루를 종이에 묻혀오던 나에게 이 작은 일은 하나의 신선한 충격같은 것이었다. 

나보다 한살 더 많은 우리 집의 연필깎이는 이미 내 동생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버렸기에 더 이상 기계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칼을 가지고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물론 식칼이나 과도는 아니다. 하핫. 

초등학교 때에 나는 정말 연필을 자주 잃어버렸다. 옛날에 NBA 농구 팀 이름이 각각 디자인 된 연필 세트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보스턴 셀틱스' 연필을 잃어버리더니 이윽고 '피닉스 선즈'를 잃어버렸다. 

결국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카고 불스'가 내 필통에서 행방불명되었을 때 NBA는 내 품에서 떠나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통탄스러웠던지! 

연필은 육각형도 있었고, 원형도 있었고, 심지어 삼각형, 사각형 모양이 있었다. 뒤에 지우개가 달린 것이 있었고, 또다른 색연필이 달린 것이 있었고, 어떤 아이의 연필은 양쪽으로 심이 나와 있어서 번갈아가면서 양쪽을 사용하는 그런 연필도 있었다. 지금 나는 육각형으로 된 정말 '정석 연필'을 칼로 깎은 것이다. 

새로 산 길고 깎이지 않은 연필을 처음 연필깎이에 넣고 돌리면서 연필을 깎을 때의 기분이란...! '하이-샤파'라고 쓰여진 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물론 칼로 연필을 깎으면 그 모양새가 과히 좋지는 않다. 표면도 울퉁불퉁하고 심도 뾰족하지 않고 왠지 어딘가가 불균형스럽다. 

그래도 이렇게 연필을 깎다보면 내가 굳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부러워할 게 못되며 수많은 4B 연필들이 그리는 '아그립파'도 내가 깎은 연필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왠지 모를 자부심이 들게 마련이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연필심이 닳은 연필을 보며,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연필부터 깎아야지'하고 마음 먹으면서 왠지 모를 기쁨을 느낀 것은 왜일까? 

어린이날이다. 다른 것에서 내가 어린이인 것을 느낄 수 없으니 칼로 깎은 연필로 글을 쓰면서 잠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가야겠다. 오늘만큼은 샤프, 굿바이.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