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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잔뼈가 굵은 이 바닥 사람들은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연구가 마무리 될 때쯤, 아니 이미 중간 정도 진행될 때부터 '이 연구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또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를 가늠하며 또 판단한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저널이 다루는 연구 분야와 저널의 명성 혹은 영향력을 고려하여 소위 '표적 저널'을 선정하고 이에 맞춰 해당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한 논문을 작성하게 된다. 이 때 통용되는 것이 바로 impact factor인데, 이는 2년간의 인용수를 출판 논문 개수로 나눈 값이다. 물론 impact factor 만이 저널의 수준을 결정 짓는 절대적인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체로 좋은 저널의 경우 impact factor가 높다는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왜냐하면 흥미롭고 우수한 논문의 경우 후속 연구 논문에서 이를 계속 인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문을 저널에 제출하는 연구자는 마치 수능 성적을 가지고 대학에 지원하는 수험생과 비슷하다. 이른바 상향 지원, 소신 지원, 안정 지원, 하향 지원 뭐 이런 것 말이다. 예를 들어 impact factor 순서로 저널 A, B, C, D가 있다고 가정할 때, 세계를 놀라게 할만한 흥미로운 연구 논문이라면 저널 A에 투고될 것이고, '논문을 위한 논문'이라면 저널 D에 투고될 것이다. 저널 A에 속하는 과학 잡지들은 대중에도 워낙 잘 알려져있는 것들인데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 등이 주로 언급된다. 저널 D에 속하는 과학 잡지들은... 너무 많아서 생략한다.
그런데 만일 우리의 연구 논문이 '성실하고 논리적으로 얻은 과학적 결론이되 모든 독자들에게는 덜 흥미로운 연구 주제를 다룬다'든지 '흥미로운 주제이긴 한데 결과가 그렇게 크게 신통하지 않다'는 경우가 되면 이제 연구자들은 이들을 저널 B에 투고해야 할지, 아니면 C에 투고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전자는 상향 지원이나 소신 지원이고, 후자는 안정 지원이 된다. (물론 D에 투고하는 경우도 있다. 왜 하향 지원을 하는지는 굳이 논하지 않겠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과학자들이 쓴 논문은 저자로서의 논리력과 작문 실력이 집약된 일종의 비문학 작품이다. 따라서 알파고(AlphaGo)조차도 개별 연구 논문의 가치를 명확하게 정량 평가할 수 없다. 하물며 로봇이 그러할진대 사람은 어떻겠는가.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공개하여 활발한 평가 토론을 유도하여 지엄한 독자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시간과 돈이 너무나도 많이 드는, 과거에는 전혀 실현 불가능한 평가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그 수천, 수만명의 독자를 대신하여 단 두세 사람이 연구 논문을 평가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바로 이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즉 동료 평가(peer-review) 과정을 거치면서 논문의 운명이 '논문 자체의 가치'보다는 '논문의 가치를 평가하는 리뷰어의 학문적 배경과 성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잦다. 물론 이것은 억울하거나 비합리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이,과학뿐 아니라 세상 모든 평가는 이와 같은 '사람의 영역'을 거치기 때문이다. 사람 사회에서 이러한 일은 알게 모르게 일상다반사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이 동료 평가 과정 자체가 워낙 극적이고 또 신(神)의 섭리만큼이나 설명 불가능한, 소위 불가해한 영역이기에 복불복이라고 자주 일컫는다.
잠시 딴소리가 길어졌는데 다시 내 논문 얘기로 돌아오자면, 6월에 투고한 논문의 경우 상향 지원의 성격이 짙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건은 역시 복불복의 영역에서 운좋게 넘어갔다고 생각된다. 물론 내 생각에 그 논문은 거절(reject)될 것이며, 나를 비롯한 저자들은 리뷰어들의 호된 비판과 폐부를 찌르는 날선 평가의 글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상향 지원을 하는 나로서는 최선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상향 지원한 저널의 리뷰어들이 내놓은 평가를 기반으로 하여 기존 논문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덕분에 완성도가 높아지게 되어 더 많은 독자들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의 과거 이력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7월 넷째 주에는 최종 답변을 줄 것 같다. 지금의 내가 가장바라는 것은 '게재 수락(accepted)'나 '수정(revision)'보다는 리뷰어의 영양가 풍부한 지적과 평가, 그리고 도움될만한 제언(提言)들이다. 아, 물론 게재가 수락되거나 수락을 위한 수정을 요구받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
선생님. AFM에 투고한지 2주가 되었습니다. 아직 under consideration 이구요, 리뷰 넘어갔을까요?
아님 아직 에디터가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peer review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리뷰하기전에 자격요건이 되는지 확인하는 건가요? 2주가 되었는데 확답이 없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말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2주가 지났으면 대체로 에디터가 리뷰어에게 논문 초안을 넘겼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이유없이 오랫동안 에디터 오피스에 초안을 계류시켜놓는 것은 저자들에게 굉장히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지요.
제 박사 지도교수님은 투고 후에는 투고 사실을 잊으라고 조언해주시곤 했답니다. 적어도 동료평가 초반에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아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여유를 가지고 결과를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논문의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되는 코멘트를 받기를 우선 바라고, 또 무리 없이 게재 승인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종종 홈페이지에도 들러주세요 :)
사실 저도 지난 달에 투고한 논문 초안의 리뷰를 기다리고 있어요 ㅋ 영국왕립화학회(RSC)의 경우, 편집장이 논문을 리뷰어에게 보내면 "in peer review"라고 상태가 바로 바뀌어서 스크리닝과 관련된 불안감을 좀 해소시켜주더군요. 애석하게도 Wiley는 그렇지 않더구요.
논문을 투고하고 리뷰를 기다리는 것에 전연 마음을 쓰지 않고 초연해 하는 자세는 이미 수많은 논문 경험이 있는 대가이거나 안전 전략 하의 하향 지원을 남발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는 덕목(?)이라고 확신합니다. 저자가 자신이 쓴 글에 애정이 있다면야 누구라도 노심초사하며 자기 글의 결과를 기다리겠지요. 그럼에도! 우리의 애태움이 동료평가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으며 오늘도 기다려보는 겁니다 ;)
언제든지 홈페이지에 들러주시고요, 다음 연구를 통해 즐겁게 논문을 써내려가는 시간을 곧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도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 :)
ㅋㅋㅋ선생님 말씀이 너무 와 닿습니다. 맞죠. 저자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노심초사할수밖에요 ㅜㅜ
근데 그 뒷말이 너무 웃기네요 ㅋㅋㅋ 정말 시원하십니다,ㅋㅋ
저의 under consideration 상태는 5주가 넘어갔습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길..
Wiley의 경우에는 리뷰 과정으로 넘어가도 under consideration이라고 두는 것 같다. 투고한 지 만 3주가 되어 가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러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