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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 이 도시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내가 어렴풋이 피츠버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쇠퇴한 철강 도시, 디트로이트를 닮아가는 위험한 도시, 아이스하키 팀 펭귄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작년 파리 기후 협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자신은 피츠버그의 시민을 대표한다고 (생뚱맞게) 입장을 밝힌 것이 가장 최근의 피츠버그 관련 경험이었다. 아무튼 그 성명 덕분에(?) 피츠버그에 대한 인식은 다소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2박3일간의 여행이 그 모든 부정적인 인상을 바꿔놓았다.
우선 도시의 위치 및 경관. 피츠버그 국제공항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나타난 피츠버그 시내를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앨리게니(Allegheny) 강과 모농가헬라(Monongahela) 강이 합수(合水)하는 지역에 자리잡은 피츠버그 시내와 여러 다리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니 뉴욕 맨해튼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 경관을 강삭철도(鋼索鐵道, incline)를 타고 워싱턴 산(Mt. Washington)에 올라가 보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다양한 형태의 다리와 피츠버그 시내의 고층 건물들, 그리고 강 건너에 있는 거대한 스포츠 경기장과 산지를 따라 곳곳에 조밀하게 세워진 주거 건물들. 다른 미국 도시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경관이었다.
이 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하고 싶다. 트윈 시티의 경우 드넓은 평지에 호수가 잔뜩 널려 있는 지형이지만 이곳 피츠버그는 마치 한국처럼 높고 낮은 구릉과 산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예를 들면 피츠버그의 카네기 멜론 대학(Carnegie-Mellon University) 근처에 있는 셴리 공원(Schenley Park)의 경우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경사가 드라마틱(?)하게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미네소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공원의 모습이다. 노년기 산지에서 인구 대부분이 생활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미네소타보다는 이런 피츠버그의 지형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모농가헬라 강 건너편에는 거의 남산같은 높은 지형이 강을 따라 이어져 있는데 이런 지형을 가진 도시가 미국 어디에 또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신기했다.
그리고 피츠버그는 더 이상 퇴락한 도시가 아니었다. 설명에 따르면 피츠버그의 철강 및 석탄 산업은 이미 오래 전에 사장되었으며 이미 그 자리는 첨단 산업과 금융업이 차지하여 시의 가치 창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즉, 회색빛 가득한 산업 도시의 이미지는 벗어 던져버린 지 오래라는 설명. 덕분에 공해나 오염, 범죄의 오명(汚名)도 자연히 사라진 것 같았다. 2박3일동안 시내를 휘젓고 다니나보니 '피츠버그는 디트로이트를 닮아간다'고 막연히 생각한 것이 크나큰 오해였음을 알게되었고, 그건 피츠버그 시민들에게 엄청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츠버그의 역사도 무척 흥미로웠다. 이주민들이 유럽에서 건너오기 훨씬 이전에 원주민인 이로콰이(Iroquois)부족이 피츠버그에 이미 무역을 위한 마을을 건설하여 살고 있었다는데 그러한 천혜의 입지 조건에 더하여 이 지역에서 생산된 품질 좋은 석탄, 그리고 그 석탄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제철 산업이 이 도시를 매우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석탄왕 헨리 프릭(Henry Frick), 교류 전로 유명한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가 모두 피츠버그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사업 확장과 개인사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미국 및 세계 경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인데, 그토록 막강한 산업적 및 경제적 영향력을 휘두른 사람들이 모두들 이 곳에서 사업을 벌였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피츠버그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모두 '거기는 왜 가?'였다. 나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가서 별로 볼 게 없으면 어쩌지' 싶었다. 하지만 2박3일의 여행을 마치고집으로 돌아온 지금, 피츠버그를 다시 떠올리자면 그 도시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굉장히 놀라운 여행지였다고 생각한다. 아무렴 아무도 여행지로 찾지 않는 델라웨어(Delaware)의 윌밍턴(Wilmington)도 여행으로 간 사람이 나인데 피츠버그는 볼 것, 할 것이 더 많았지 뭐. 즐겁게 먹고 마시며, 또 오랫동안 걸어다니며 이것저것 배우고 느낀 좋은 여행이었다. 다음 여행이 또 기다려진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