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부터 조금씩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제출 일자에 가까워져서야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붙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떻게 보면 논문 작성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 같다. 학회와 기타 다른 일들로 바쁘고 허탈해했던 2~3월은 논문의 표지와 본문 이외의 많은 부분들 ㅡ 이를 테면 목차와 초록, 그리고 이력서 등 ㅡ 을 부지런히 맞추고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동안 구상한 형식대로 4월부터 본격적으로 본문을 작성하다보니 이거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박사학위논문심사 발표(디펜스)가 6월 15일로 정해졌으니 아직 1달 남짓 남았기에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새 마음 한 켠에 조바심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간을 많이 잡아 먹는 가장 큰 원흉은 논문의 재구성이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 중에 발표할 만한 내용들을 추려서 논문 내용 작성 중인데, 쉽게 하려면 그냥 병렬식으로 나열했으면 되었겠지만 왠지 그러기엔 너무 성의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 모든 내용들을 하나하나 다 해체한 뒤 재구성했다. 예를 들면, 연구 주제들이 T1, T2, T3 일때 병렬식 나열 구성을 따르면, 혹은 '스테이플러' 논문집 형식을 따르자면


T1: A1 - B1

T2: A2 - B2

T3: A3 - B3


이런 형태의 논문 순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시도하는 형태는 다음과 같다.


A1 - A2 - A3

B1 - B2 - B3


따라서 모든 내용을 재배열하고 표현과 단어 사용의 통일성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재구성의 결과 필연적으로 새롭게 작성하거나 고쳐 써야 하는 부분이 대폭 늘어나게 되었다. 그나마 실험의 결과와 고찰에 대해 적는 부분은 괜찮은 편이다. 그간 여러 편의 논문을 쓰면서 특정한 표현 형식에 대해서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놈의 연구의 의의와 사람의 이목을 끌게 만들어야 하는 도입 부분이다. 이 부분을 영어로 맛깔나게 작성한다는 것이 여간 고민스럽지 않다.


어차피 외부로 출판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내 학위논문을 읽는 것은 아니기에 이렇게까지 고심하며 학위논문을 작성해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지만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욕심이다. 내가 처음으로 제본하여 출판하는 책이지 않는가. 그리고 적어도 실험실 사람들은 필요할 때 읽어 보겠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글을 써내려가면서 실험실 사람 누군가가 어느날 꺼내봐서 어느 부분을 읽어보아도 이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참. 디펜스 때에는 스테이플러 논문집 형식의 순서를 따를 것이다. 글로 되어 있는대로 착실하게 설명한다는 것이 꼭 '효과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글로 된 정보를 접할 때와 말로 전해지는 정보를 접할 때 인식과 이해의 경로가 사뭇 다르다는 점을 요 몇년 사이에 깨달았다. 연구 내용을 전하는 기회를 여럿 가지게 되면서 알게 된 참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