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던 일들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화학회(ACS)에서는 post-publication promotional service를 시행하고 있는데, 논문 게재 후 연구 홍보를 위한 영상 초록(video abstract)에 이어 최근에는 1분짜리 짧은 영상(video bytes - YouTube Short나 심지어 TikTok에도 올릴 정도의 길이를 지향하는 듯) 서비스까지 개시했다. (https://authoringservices.acs.org/en/promotional-services/) 일반적인 과학 유튜버들이 올리는 영상처럼 다양한 그림과 영상, 그리고 짤막한 문구들과 영상 효과들이 어우러진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1. 영상의 길이를 짧게 하는 것의 목적이 lay audience, 즉 과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깊지 않은 일반 독자/시청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학 논문 작성은 주로 과학자 커뮤니티 내에서의 정보 교환이 목적이었는데, 이러한 형식의 영상 제작은 일반 대중의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2. 그렇다면 일반 대중을 쉽게 감응(感應)시킬 수 있는 연구 결과라든지, 영상으로 표현되었을 때의 미적 감각이 탁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많은 호응을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고분자 연구로 치자면 이론적 계산을 통해 고분자의 물성을 이해하는 연구보다는 분명 칼로 끊어놓았는데 다시 붙여놓고 빛을 쪼여주니 완벽하게 붙는 현상이 빨리감기 영상을 통해 눈으로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자가치유 고분자 연구가 더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과학 논문들 사이에서도 소위 '핫하고 팬시한' 연구의 인용 수가 더 높은데 말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첨단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영상 제작에 큰 자본을 들일 수 있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3. 연구자들의 고심과는 무관하게 출판사들은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길을 열었다. 영상 초록의 경우 개당 $1,500, Video Bytes는 개당 $350의 제작/업로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연구 활동에 바쁜 사람들이 영상 제작을 손수 맡아 진행할 가능성은 없으니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출판사에 돈을 내고 제작을 의뢰할 것이 뻔하다. 놀랍게도 영상 세계는 지면 인쇄와 달리 공간이나 시간의 제약 없이 제작 및 배포가 가능하므로 더 넓은 독자층으로 하여금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 중요한 출판사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수익 창출 방식이 없을 것이다.
4. 최근 19세기의 위대한 영국 화학자 중 하나인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가 영국왕립학회 철학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에 발표했던 논문들을 몇 편 읽어보았는데, 모든 것이 다 글로만 쓰여있을 뿐 그림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간단한 도식 외에는 그림이 별로 없었던 과학 논문에는 20세기 중후반 들어 사진, 인쇄, 편집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러 흑백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와서는 해상도 높은 컬러 사진이 별 무리 없이 논문에 실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까지는 '글' 기반의 논문에 '그림'이 끼어든 형태였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에는 '영상' 기반의 내용에 '글'이 끼어든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주로 초록(abstract)나 요약(summary)이 대부분이지만, 논문 전체를 영상으로 만드는 시기도 머지 않았다.
5. 지금까지는 가설 설정, 설정된 가설의 검증을 위한 시험, 검증된 가설을 기반으로 한 규칙의 발견, 발견된 규칙을 동료들에게 발표하는 일련의 행위들 전부가 '과학 연구 활동'에 포함되어 있었고, 개별 연구자들은 이 모든 행위들을 잘 해낼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시대적 변화를 주시하자면 이들 행위 중 가장 마지막 단계는 먼저 분화되어 '과학 연구 활동'으로부터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ㅡ 즉, 실험을 통해 결론을 내리는 일은 기존의 연구자들이 담당하고, 이들을 적절한 형태의 미디어로 배포하는 행위는 제작 담당자들이 전문성을 발휘하여 하는 것이다. 사실 부분적으로 지금 이 단계는 분화의 조짐이 보이는데, 저널 커버 사진의 경우 거의 대부분 외주 업체에 의뢰해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심지어 최근에는 논문에 들어가는 그림들 역시 전문가 집단의 컨설팅과 제작 의뢰를 통해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6. 그렇다면 딥페이크 등의 문제가 대두되는 이 새로운 시대에, 과학 연구 내용을 담은 영상에 대한 과학 윤리를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지면에 인쇄된 논문들을 대상으로 연구 윤리 위반의 경우들, 예를 들면 논문 표절, 그림 바꿔치기와 같은 사례들을 논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우리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영상 논문의 저자는 누구인가? 영상의 표절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영상 효과는 어느 수준까지 허용 혹은 통제 가능한가?
7. 그나저나 같은 영상이더라도 잘 생기고 목소리가 좋은 유튜버의 영상이 더 인기가 많은 법인데......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