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경험 없이는 궁금한 것을 제대로 해소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마크 램지어(J. Mark Ramseyer) 교수의 논문인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 (태평양 전쟁에서의 성 계약)'을 읽어보았다. 8쪽 정도의 길지 않은 논문이고 난해한 용어가 등장하지 않아서 화학을 전공한 나같은 사람도 비교적 손쉽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사회과학 논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관심이 있고 해당 저널 구독권을 가진 분이라면, 혹은 그런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라면 읽어봄직하다. (물론 자연과학 논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도치구문이나 어휘가 등장해서 신기하긴 했다.)


이 논문의 핵심 주장은 굉장히 명료한데, 전쟁터에 설치된 윤락업소(=위안소)에 일할 여성을 모집해야 하는 포주와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성판매를 하고자 하는 여성 사이에서 경제적 인센티브를 두고 벌이는 상호작용을 성판매 계약을 통해 읽어내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통상적인 대도시의 윤락업소와는 달리 위안소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위험도가 매우 높으므로 여성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기 힘들다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1. 위안소에서는 규범에 따라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며,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군인들은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위안부들에게 주었고,
  2. 위안부로서의 계약 기간을 통상 도쿄와 같은 윤락업소에서보다 훨씬 줄였으며 (6년 → 2년),
  3. 위안부가 성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도시 윤락업소에 비해 높게 책정되는 한편,
  4. 위안부들이 계좌에 모은 돈을 저금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포주들이 예치금을 두게 하고, 선불금으로서 주어진 빚이 적을수록 위안부들 몫으로 배분되는 수익이 많아지도록 계약 조건을 변경하여 위안부들이 위안소에서 보다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를 제공하였다. 또한, 선불금을 다 갚고 나면 자유롭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5. 일부 위안부들은 큰 돈을 저축하여 본국에 돈을 부치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명의로 또다른 위안소를 세울 정도였다고 한다. 

즉, 위험한 상황에서도 일할 수 있게끔 근로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주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자가 태업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 ㅡ 바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고용인들이 고민하는 사항인데, 램지어 교수는 도쿄와 같은 대도시의 윤락업소에서 맺는 통상적인 성판매 여성의 계약과는 다른 위안부와의 계약 조건으로부터 태평양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발현되는 고용인과 피고용인간의 상호 의존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읽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램지어 교수는 결론에서 위안부 계약이 기본적인 게임 이론(Game theory)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오랜 역사 및 전쟁 범죄 문제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린 상태에서 윗 내용만 읽으면 성매매에 호의적이든 비판적이든 포주와 여성 간에 치열한 두뇌싸움과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눈치싸움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문을 읽고 나서 ㅡ 비록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혹은 내가 한국인이라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 수도 있지만 ㅡ 아래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1) 성매매 산업에도 포주와 성판매 여성 사이의 고용인-피고용인 관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게 다른 산업의 고용인-피고용인 관계와 이렇게 동등하게 볼 수 있는 것인지, 혹은 이렇게 보는 시선이 학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이루는지 의아했다. 이 논문을 읽다보면 윤락업소나 위안소의 포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여느 경제 주체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포주들에 대한 인상 ㅡ 인권 유린이라든지 속임수 등 ㅡ 에 대해서는 완전히 선을 긋고 있는 것을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서 엿볼 수 있다:


But the contracts suggest that the women knew that recruiters could lie, knew that brothel owners could cheat... (하지만 여성들이 계약을 맺은 것을 보면 알선업자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나 포주들이 자신들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Surely, historians sometimes insist, the brothels must have manipulated the charges for food and clothing to keep prostitutes mired in perpetual debt. At least on a large scale, however, they did not do this. (포주들이 식비나 의복비를 조작해서 성판매 여성들이 끝없는 빚에 허덕이도록 했을 것이라고 분명 역사가들이 종종 주장하지만, 최소한 다수의 포주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People cheat each other in any industry. (어느 산업에서나 사람들은 서로를 속인다.)


(2) 한국에서의 위안부 고용과 관련하여 논문에서는 먼저 일제 치하 조선에서 알선업자들이 사기를 쳐서 여성들을 공장이 아닌 윤락업소로 보내는 행각이 비일비재했다고 소개하는데, 1935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식민지 조선에서 활동한 직업 알선업자는 일본인 247명, 조선인 2720명으로 조선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를 근거로 램지어 교수는 이 문단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적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국 측 입장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기에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It was not that the government – either the Korean or the Japanese government– forced women into prostitution. It was not that the Japanese army worked with fraudulent recruiters. It was not even that recruiters focused on the army’s comfort stations. Instead, the problem involved domestic Korean recruiters who had been tricking young women into working at brothels for decades. (조선 총독부나 일본 정부가 여성들로 하여금 성을 판매하게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군이 사기치는 알선업자들과 동업한 것은 아니었다. 알선업자들이 일본군 위안소를 주 타겟으로 삼은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수십년간 사기를 쳐서 젊은 여성들을 윤락업소에서 일하게 만들었던 조선인 알선업자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램지어 교수의 이러한 관점은, 비록 지금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긴 했어도,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일본 외무성장관의 밝힌 내용과도 배치된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3) 이 논문의 참고문헌 대부분은 일본인들의 서적이나 논문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제목이 모두 로마자로 전자(轉字)한 일본어인 것을 살펴볼 때 저자인 램지어 교수는 일본어 능력이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약력에 따르면 램지어 교수는 18세가 될 때까지 일본 미야자키(宮崎)현에서 살았기에 일본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그런데 위안부에 관련된 연구가 일본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한국, 심지어 자국인 미국에서도 진행된 바 있기에 분명히 교차 검증 내지는 비판적으로 비교분석할 목적으로 참고할 만한 사료는 충분했을텐데, 그나마 비일본인이 저술한 참고문헌을 찾아서 보니 이게 또 가관이다. 한국인이 저술한 서적 두 권이 눈에 띠는데, 하나는 이미 국내에서도 큰 논란이 되었던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인 『帝国の慰安婦』, 그리고 일본으로 귀화한 최길성 교수가 쓴 『朝鮮出身の帳場人が見た慰安婦の真実(조선 출신 접대원이 본 위안부의 진실)』이다. 즉, 참고문헌 리스트를 보면 램지어 교수는 일본인들이 생산한 자료, 혹은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 우익의 세력에 동조하는 주장을 담은 문헌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딱히 들여다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4) 일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ㅡ 나의 지도교수님이 늘 항상 강조하신 것이지만 ㅡ 논문은 교과서가 아니다. 논문은 하나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 이야기일 뿐이며 그것이 출판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주장이 변치 않는 이론이 되거나 진실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학술 잡지는 바로 이 다양한 주장들이 서로 비판적으로 교차 검증되면서 학계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주류 의견을 형성해 나가는 학문의 장(場)이 아니던가? 그러니 원론적으로는 학술 잡지에는 정말 다양한 목소리가 실릴 수 있으며 그중에는 가끔 근거가 박한 논문, 윤리가 결여된 논문이 있기도 한 것이다 ㅡ유감스럽지만 학자들이 그런 문제 있는 논문을 작성하고 투고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으며, 그것도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램지어 교수의 논문으로 촉발된 이 문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애초에 별 효과도 없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을 제한, 위안부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라들의 학자들로부터 다양한 학문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검열을 시도하고 문제를 제기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한 대응은 연판장 돌리기나 대중 시위가 아닌, 보다 엄선된 풍부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이 지향하는 미래 가치를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으면서도 성매매 산업이 가지는 근본적인 성폭력의 문제를 놓치지 않고 고찰할 수 있는 학술 논문의 투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왕지사 다양한 국적의 학자들이 합심하게 되었으니 그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더 풍부한 사료와 근거를 제시해 줄 수 있는 좋은 논문으로 해결을 보면 어떨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