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하여 온 세상에 충격을 주었던 4년 전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경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기묘묘한 인간의 복잡한 지능을 넘어서기에는 힘들 것이라는 믿음, 체스보다는 훨씬 더 수가 많고 복잡한 바둑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통찰력이 잘 먹힐 것이라는 믿음이 단 며칠 사이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모두 인공지능에 대한 깊은 경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두려움을 함께 느꼈다.


오늘 이와 비슷한 수준의 경탄과 두려움의 쓰나미가 바둑이라는 게임의 영역이 아닌, 단백질 구조 분석이라는 과학의 영역에 몰려왔다.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단백질 구조 에측 인공지능인 알파폴드 2(AlphaFold 2)가 2년마다 벌어지는 단백질 구조 분석 콘테스트인 CASP (Critical Assessment of protein Structure Prediction) 에서 2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1등을 차지했는데, 예측의 정확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점수화했을 때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 2는 90점에 가까운 점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실험결과와 대략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알파폴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는 40점만 되어도 1등을 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는데 알파폴드가 처음 등장한 2018년에는 이를 간단히 넘어서더니 2년만에 90점에 육박하는 점수를 기록한 것이다. 2020년에 참가한 다른 팀들 역시 알파폴드의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을 이용했다고 다들 명시함으로써 알파폴드가 2년 전에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 끼친 충격이 어마어마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들 중에 그나마 잘한 팀들은 75점대였다고 하니, 알파폴드 2가 시쳇말로 '넘사벽'임이 입증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불과하지만,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에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는 말이 쓰여있었다는 말이 전하는데, 사실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알파고의 화려한 등장 이후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노력을 압도하는 결과물을 내놓으리라는 것을 예상못한 사람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 속도와 범위가 우리가 생각했던 수준을 많이 뛰어넘는다는 사실에서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파고가 기존 바둑의 흐름 및 연구 방향을 완전히 뒤바꾼 것처럼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 분석이라는 분야, 그리고 이와 연계된 학문 영역에서 굉장한 파급효과를 낼 수 밖에 없다. 튀빙겐(Tübingen)의 막스 플랑크 발생생물학 연구소(Max-Planck-Institut für Entwicklungsbiologie)의 연구자인 안드레이 루파스(Andrei Lupas)는 이런 말을 했다:


이건 약학을 바꿀 겁니다. 연구를 바꿀 거고요, 생명공학을 바꿀 겁니다. 모든 걸 바꿀 거란 말이죠.


이게 비단 이쪽 분야 만의 일일까? 단백질보다 훨씬 간단한 분자들의 합성을 다루는 합성 화학(synthetic chemistry)에 이러한 딥러닝 기술이 접목된다면 우리가 시행착오를 겪느라 하루 종일 실험실을 떠나지 못하는 그런 일들이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고려하지 못했던 분자간 입체적 상호작용에 의해 지금까지 배웠던 지식으로는 예측하기에 곤란했던 합성경로가 개발되거나 규명되지는 않을까? 최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ㅡ 그것이 배터리든 태양광 전지든 화공 공정이든 ㅡ 최적의 비율과 최적의 촉매를 찾는 일은 이제 인간보다는 인공지능이 하는 일이 훨씬 효과적이고 또 안전하지 않을까? 


나는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항상 인공지능과 그와 수반되는 다양한 기술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넘어 전문 연구분야까지 싹 다 바꿔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지금 외국어를 익히는 것이 번역 및 통역 기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일종의 심심풀이 및 시간죽이기 취미 정도로 취급되는 것처럼 나의 직업인 연구 역시 인간이 인공지능이 하는 일을 좀 거들어주거나 관리하는 식의 유희로 취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한 분야의 연구를 더욱 깊게 파고들기 보다는 넓은 시야를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딥러닝은 딴 사람들의 연구 영역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도 이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학습을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답은 생각보다 명확하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33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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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