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비롯한 동아시아 언어에서는 '월(月)', 즉 달을 표현할 때 숫자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1월을 정월(正月)이라고도 하지만, 아무튼 1년 열두달은 모두 '숫자+월'의 명칭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이게 꼭 현대 한국어의 표현만이 아닌 것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봐도 四年冬十月 뭐 이런 표현이 있는 것으로 봐 고대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중국의 영향에 따라 한 해를 

일월, 이월, 삼월, 사월, 오월, 유월, 칠월, 팔월, 구월, 시월, 십일월, 십이월

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도유럽어족을 비롯한 많은 외국어에서는 각 달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다. 예를 들어 영어로는

January, February, March, April, May, June, July, August,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

라고 한다. 사실 영어로 월 이름을 처음 배울 당시는 우리가 무척 어렸을 때인지라 여기에 대해 별다른 의구심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면, 달마다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질 법 하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세 번째 달이 3월이니까 숫자 3이 주는 이미지가 아주 강렬하지만, 글쎄, 영어를 모어로 쓰는 외국인들은 March 라고 할 때 3이라는 숫자 이미지가 바로 느껴질까?

비슷한 예는 요일(曜日) 이름에도 있다. 한국어는 일본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동양철학 개념으로 적절하게 번역된

월요일(月曜日), 화요일(火曜日), 수요일(水曜日), 목요일(木曜日),
금요일(金曜日), 토요일(土曜日), 일요일(日曜日)

을 사용하지만, 중국어는 요일을 말할때 

星期一, 星期二, 星期三, 星期四, 星期五, 星期六, 星期七

곧 일이삼사오륙칠(一二三四五六七)을 사용한다. 한국인이 화요일이라고 하는 것을 중국인은 星期二(xīngqīèr)라고 하니, 중국인에게는 이 날이 한 주의 '두 번째 요일'이라는 인식이 더 깊지 않을까? 이 측면에서는 오히려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한국인들이 외국인을 바라보며 '달마다 이름이 있네?'하고 신기해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한 가지만 더 달자면, 이 요일 이름을 숫자로 표현하는 언어는 생각보다 많은데 그 나라의 문화에 따라 숫자를 세는 기준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러시아어에서는 화요일이 Вторник(vtornik)인데, 이는 '두 번째'를 의미하는 второй에서 온 것으로 러시아 사람들은 일요일을 기준으로 하되 그 다음날부터 요일을 세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페르시아어로 화요일은 سه شنبه (seŝanbe)인데 سه가 3이고 شنبه 는 토요일을 의미하므로 토요일을 기준으로 3일 지난 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종교예배일로 지키는 요일이 기독교는 일요일, 이슬람교는 토요일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기독교 문화가 강한 그리스어로 화요일은 '세 번째'를 의미하는 τρίτος(trítos)에서 온 Τρίτη(tríti)라는 것. 즉, 세 번째 날이라는 건데 여기서는 일요일이 기준이 됨과 동시에 일요일부터 요일을 세는 것으로 보이며 같은 정교회 주류 국가임에도 러시아와는 세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러니까 월 이름, 요일 이름에는 각 나라 고유의 문화와 생각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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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