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처음에 이 논란이 아직 겁없는 한 30대 초선 의원이 감내해야 하는 통과의례같은 것인가 생각하고 별 신경을 두지 않았는데, 내막을 자세히 보니 나보다 4살 많은 이 형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가늠해 보다가 다소 소름이 끼쳤다.


보통 낙태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김남국 의원 자신이 언급한대로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이나 보수적인 개신교인들, 신념상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일수록 현재 진행되는 낙태죄 폐지 운동에 굉장히 부정적이다. 여기에는 남녀가 따로 없고 노소도 따로 없다. 왜냐하면 생명에 대한 인식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 그룹에 대해서 특별하게 형성되는 생명에 대한 인식같은 건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명을 실제로 잉태하고 출산하는 경험을 가지는 나이든 여성들이라면, 좀 더 보수적일수도 있겠다 ㅡ 왜냐하면 그분들은 생명이 자기 몸 속에서 시작되고, 몸 밖에서 성장하며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경험하는 것을 본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형은 뜬금없이 20~30대 남성들이 법안을 바라보는 평가,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선을 언급했다. 


적 활력이 뛰어난 20~30대 남성이 상대 여성을 가장 많이 임신시키는 나이대의 남성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굳이 이 나이대 사람들을 콕 집어서 낙태죄에 대한 인식을 운운하는 것은, 이 형이 낙태죄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 남녀노소 누구나가 가지는 보편적인 '생명에 대한 인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입증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닌 "임신시킨 당사자"들이 낙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법안 심의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듯한 모양인데, 뭔가 공동책임이라는 그럴 듯한 허울 아래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것은 아무말이다. 아래와 같이 잘 따져보자.


임신을 원하든 원치 않든, 임신 및 출산의 결과가 여성 당사자에게 큰 불행을 낳는 경우라면? 예를 들어 산모가 위독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라든지, 심대한 유전병이나 결손 등의 신체적 문제가 있음이 조기에 발견되어 출산 이후 양육에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든지. 혹은 임신 자체가 성폭력에 의한 것이라든지. 이런 경우는 법에서도 일부 인정하고 있는 범위이며 이에 대해 20~30대 남성도 낙태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 문제는 없는데 만일 여성이 임신을 원했다면? 이런 경우에는 20~30대 남성이 낙태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남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아이를 잘 낳아서 잘 기르면 그만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남성이 혼인을 하여 아이를 책임지고 키을 것이며, 후자의 경우라면 양육비를 지급하는 의무가 부과될 것이다. 양육 책임은 낙태죄가 다루는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으로서 이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20~30대 남성이라면 "그 자식은 쓰레기다".


그렇다면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에는? 현 상황은 낙태죄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여성은 출산을 하여 아이를 키워야 하든지, 혹은 불법적인 낙태를 해야 한다. 먼저 전자의 원치 않는 출산을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역시 앞에서 언급한 '여성이 임신을 원한 경우'와 동일하다. 그대로 복사해보자 ㅡ 이런 경우에는 20~30대 남성이 낙태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남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아이를 잘 낳아서 잘 기르면 그만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남성이 혼인을 하여 아이를 책임지고 키을 것이며, 후자의 경우라면 양육비를 지급하는 의무가 부과될 것이다. 양육 책임은 낙태죄가 다루는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으로서 이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20~30대 남성이라면 "그 자식은 쓰레기다". 틀린 말 없지 않은가?


여기까지는 결국 여성이 낙태를 법이 인정하는 테두리에서 했거나, 혹은 낙태를 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여성은 범법자가 아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는 낙태죄 폐지 논의와는 사실 상관 없는 경우이다. 또한, 여기까지는 그 '남성의 인식'과는 무관하게 우리 남성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나기 때문에 남성의 인식은 아무런 가치 혹은 법적 준거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자, 이제 마지막 경우, 곧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여 낙태를 하려고 한다. 이 막판에 가서야 상황은 드디어 '남성의 인식'으로 인해 두 가지로 갈리게 된다.


먼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여성이 낙태를 하려는데 남성이 이를 원치 않는 경우. 이런 경우라면 그냥 남자가 모든 양육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하고 여성의 성공적인 임신과 출산을 도와야 한다. 진정 생명을 사랑한다면 남성이 이렇게 모든 부양을 해 줘야 할 것이나, 사실 이건 전근대적이고 아주 고대 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상황 아닌가? 납치해서 겁간을 시키고나서 강제로 결혼하게 하는 뭐 그런 상황으로밖에 생각이 안 된다. 그런데 만일 낙태가 범죄가 아니게 된다면? 여성은 자신의 뜻에 따라 낙태를 할 수 있고, 남성은 그 결과에 대해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신의 가치'를 깨뜨린 상대방 여성과 관계를 계속 이어갈지 아닐지를 결정하면 그만이다. (정말 논리적으로나 가능할 법한 상황을 쓰면서 나 스스로도 지금 어이없어 하고 있다.) 따라서 심지어 이 경우조차도 20~30대의 남성의 인식이 낙태죄에 대한 판단에 끼칠 영향은 전무하다.


이제,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여성이 낙태를 하려는데 남성이 이를 원하는 경우. 경제적인 이유에서 그러든, 혹은 남성이 아주 쓰레기라서 책임지기 싫으니 낙태를 독려하든, 어쨌든 피임을 제대로 못한 한 쌍의 커플이 져야 할 문제이다. 낙태가 죄라면, 이 두 사람은 그야말로 누구도 원치 않는 파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이 경우로 인해 양산된 수많은 미혼모와 책임지지 않고 연을 끊은 생부의 이야기를 TV 막장드라마뿐 아니라 '레미제라블'과 같은 고전 소설에서조차 찾아볼 수 있으며, 결국 남국이 형이 언급한 그 '낙태에 대한 20~30대 남성의 인식'이 실질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경우는 바로 여기 이후부터 해당된다.


만일 낙태가 비범죄라면? 그러면 이 모든 파탄은 여성에게서뿐만 아니라 남성에게서도 떠나가게 된다. 비록 여성의 신체가 감당해야 할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 어려움이 원치 않는 출산으로 야기되는 어려움에 비할 바 못될 것이다. 남성의 경우에도, 비록 제어되지 않은 사정으로부터 얻은 쾌감의 댓가로서 여성의 몸을 힘들게 했다는 오명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테지만, 어쨌든 양육을 책임지지 않는 생부라는 비난을 들을 이유도, 혹은 원치 않는 양육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망가지는 것을 걱정할 이유도 없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여기까지는 여성이 미혼자일 때를 가정한 경우이다. 예상과는 달리 기혼자 여성들의 낙태 건수도 많은데, 앞에서 언급한 그 모든 경우에 여성이 기혼자라고 생각해 보자. 원치 않는, 계획되지 않은 출산으로 가정이 힘들어지는 것에 동의할 남편이 어디에 있겠는가?


여기까지 동의한다면, 도대체 남국이 형이 언급한 그 '낙태에 대한 20~30대 남성의 인식'의 실체는 무엇인가 의심해 봐야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경우에서 20~30대 남성 입장에서 여성의 낙태죄 폐지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원치 않는 임신을 시킬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라면 쌍수를 들고 낙태죄 폐지를 찬성해야 옳을 판이다 ㅡ 그 모든 경우에서 낙태죄 폐지가 20~30대 남성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 경우는 단 하나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낙태죄의 성급한 폐지는 피임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서는 '어차피 너, 낙태하면 되잖아?' 이런 정신 나간 심리를 가진 "쓰레기 한남"들에게 유리한 조치이니 추가적인 보완이 있지 않고서는 위험할 판국이다.


그리고 이쯤 와서야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발언에 대해 정의당 관계자나 다른 여성주의 운동가들이 발끈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굳이 여기서 글로 쓸 필요는 않겠지만, 남국이 형은 질의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편견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친위대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황을 성찰하기보다는 전면적으로 불같이 대응하면서 '초선 의원이 통과의례처럼 겪는 앓이' 수준에서 그칠 일을 더 불거지게 만들었으니 이는 당신의 사고와 행동의 그릇이 다른 이들이 기대하던 만큼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국정감사 때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아마 남국이 형의 행동은 보수 우파들의 온갖 협잡과 공격을 겪으며 거대 여당 권력을 쟁취한, 노회한 현 여권 어르신들에게는 썩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남국 의원이 질의에서 '남성도 여기에 대해서 심각한 책임을 느껴야 할 문제라고 생각이 든다'라고 했는데, 낙태에 대해 20~30대 남성들이 심각한 책임을 느낀다면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을 다문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