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연성(難燃性, flame retardancy)과 관련된 연구 결과라던지 실험 수행이 잦아지면서 관련된 내용과 단어들을 전보다 훨씬 더 자주 접하게 되는데, 논문과 몇몇 글들을 읽다가 그동안 간과했던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inflammable과 flammable이라는 영단어였다.


'불이 잘 붙는', '가연성(可燃性)의' 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는 flammable이다. 그래서 가연성 시약이나 액체를 담는 시약장에 붙어 있는 경고 표지에는 flammable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다. 그런데 통상 경고 표지는 영어로만 쓰여 있지 않고, 하단에 보면 다른 라틴 문자 기반의 언어로도 쓰여 있는데 주로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다. (간혹 독일어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실험실에 있는 경고 표지를 다시 살펴보니 스페인어로는 inflamable, 프랑스어로 inflammable이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초급 수준의 일반적인 단어의 경우 영어는 게르만어군에 속하므로 주로 독일어와 유사한 형태를 보이지만, 고급 어휘로 갈수록 라틴어를 위시한 로망스어군의 영향을 깊게 받은 영단어의 특성상, 가연성을 운운하는 이런 수준의 영단어라면 로망스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언어의 단어에서는 보이는 in-이 빠져 있는 것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사실 영어에도 inflammable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로 '불을 내다.'라는 뜻의 inflammāre로, inflammable이란 영단어는 '불이 잘 붙는'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다. 문제는 영어권 사람들이 in-이라는 접두사를 invisible(보이지 않는), incorrect(옳지 않은)과 같이 '반대(反) 혹은 부정(不, 非)'의 의미를 부여하는 접두사(prefix)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inflammable이라는 단어를 원래 뜻과는 정반대인 '불이 잘 안 붙는', '비(非)가연성의'라는 단어로 오해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에서 가연성 물질을 의미할 때에는 in을 빼버린 flammable을 쓰고, 비가연성 물질을 의미할 때에는 또다른 접두사인 non-을 더해서 non-flammable이라고 쓴다고 한다 (non-은 통상적으로 하이픈을 붙여쓰는 경향이 있다.) 좀 황당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스페인어와 프랑스어에서는 비가연성 물질을 의미하는 형용사로서 앞에서 사용한 단어에 진짜 부정의 접두사인 in-을 추가한 ininflamable, ininflammable가 된다고 한다.


여기서 추가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점 한가지가 있다. 우리가 상처가 나거나 했을 때 빨갛게 붓고 열이 나는 현상을 영어로는 inflammation이라고 하는데, 어형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앞의 inflammable과 동일한 라틴어 inflammāre가 이 단어의 어원이다. 이 경우에는 반대되는 현상에 대한 주의점이 딱히 없으므로 in이라는 접두사를 떼지 않는다. 이 단어를 동아시아에서 번역한 단어가 바로 염증(炎症)인데, inflammāre와 통하는 한자인 '불꽃 염(炎)'자를 쓴다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