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후보의 아내, 아들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음에 따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로 후보들을 비판하는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 말이 등장하는 사서삼경의 "대학(大學)" 구절을 보면 아래와 같다: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일단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구절로 다로 떼어 나온 건 없고 여기서 파생된 어휘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수신이 첫번째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순서임도 파악 가능하다: 격물 - 지지(치지) - 성의 - 정심 - 수신 - 제가 - 치국 - 평천하.


뜻을 헤아려보면 수신 이전까지는 내면적인 다스림을 논하다가, 수신을 기점으로 점차 타인의 다스림으로 확장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몸(身) 다음에 가족(家), 그리고 나라(國), 그리고 전세계(天下) 순서인데 가족이 사리에 맞지 않게 껴 들어가 있다. 이 말을 춘추전국시대의 봉건제를 염두에 두고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주(周)나라 이후, 천하(天下)와 동일시된 대륙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주나라의 임금, 곧 천자(天子)였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직접 통치가 어려웠던 고대에는 광활한 영토 각 곳에 제후(諸侯)를 임명하여 그곳 백성을 지배하게 했는데, 그들이 다스리는 영토를 국(國)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후 아래 경(卿)과 대부(大夫) 계급도 소규모 영지가 있었는데 이를 가(家)라고 했다. 이들 밑에 있는 선비 계급인 사(士)에게는 영지가 없었고, 이들 중 경과 대부 계급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신(家臣)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점점 뜻이 확장되어 어떤 권력가 곁에서 활약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어휘가 되었다.


즉,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사, 경대부, 제후, 천자의 순서대로 계급이 상승함에 따라 다스리는 대상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다음 계급으로 올라서게 되면 더 큰 일을 도모하고 다스림에 마땅하다. 따라서 이 가(家)를 가정이 아닌 옛 봉건제 하의 소규모 영토로 이해한다면 이 글귀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오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 얘기가 왜 나오냐하면, 사실 어떤 개인이 가정을 잘 이뤄냈는지 가꾸었는지는 당사자의 학문적 혹은 정치적 역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이를 너무 걸고 넘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까고 싶은 사람들이 이 글귀를 운운하며 '가정도 제대로 못 건사한 사람들이 나라는 어떻게 경영한단 말인가?'라고 개탄해 한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땐 저 문제에서 자유로워 나라를 다스릴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집구석은 개차반이어도 훌륭히 국가적 책무를 잘 수행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압도적 절대다수이다. (당장 현재 미국의 대통령 아들내미 꼴부터...) 오히려 내 뜻대로 최소한 뭔가를 행할 수 있는 정치의 영역과는 달리 숨은 변수와 온갖 운이 판치는 가정의 영역은 개인의 역량으로 뭔가 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ㅡ 우리 아버지가 나같은 아들을 두고 몇십년 살다가 이 고생 저 고생할 줄 어찌 알았겠으며 우리 어머니 없었으면 어찌 제대로 가장 구실을 했겠는가, 이건 아버지의 능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주사위게임같은 거다. 그러니 반대파 사람이 고위공직자 후보에 오르면 가장 약한 부분인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ㅡ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근사한 한자어와 함께.


애초에 수신(修身)의 문제였던 것이다. 가정을 잘 다스려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 잘못된 인식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