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랫동안 나와 함께 연구를 수행했던 前 학부실습생이자, 학사인턴이자, 석사과정 학연생이자, 석사인턴이었던 장민정 연구원이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그동안 여러 실습생, 인턴, 박사후연구원들이 우리 연구실을 거쳐가며 송별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이번은 무척 특별했다. 내가 KIST 전북에 들어와서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지도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연구원이기도 했고,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꽤 오랜 시간 산전수전(山戰水戰) 겪으며 함께 연구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내리 언급하기 막막할 정도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장하게 모든 것을 다 헤쳐나가며 모든 연구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해 나간 모습이 무척 기특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장민정 연구원은 학연생으로서 KIST 전북에서 정말 훌륭하게 연구를 해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지도했다'고는 하지만 나 역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모든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틀렸다는 것을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우습지 않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이런 얘기까지 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할까? 내게 지도를 받는 학생이 괜찮은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학생을 지도하는 내가 괜찮은가를 먼저 생각해보면 한없이 미안하고 또 부끄러운 구석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처음 책임박사로서 임무를 수행할 때에 비하면 꽤나 많이 성장했다. 모든 것이 연구를 함께 수행하는 학생연구원, 인턴연구원, 박사후연구원 동료들 덕분이다.


장민정 연구원이 석사과정을 진학하기로 마음먹고 내게 물어봤던 것 중에는 내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도 있었다. 내가 그때 답하기를, 우리는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누가 봐도 탄탄하게 잘 수행된 '좋은 과학'을 하는 연구실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리고 그 결과 '아, KIST 전북의 김성수 박사 연구실에서는 OO를 한다.'라는 일종의 고유한 연구 영역을 확보해나가는 것이 내가 연구를 수행하는 목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장민정 연구원이 주도하여 게재 승인된 4편의 논문들이 뭐 엄청난 impact factor를 가진 저널에 출판되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ㅡ 그래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ㅡ,  적어도 장민정 연구원이 1저자로 등재된 연구 논문들만 잘 음미해보아도 'KIST 전북의 김성수 박사 연구실에는 다양한 바이오매스를 탄화하여 탄소 섬유를 비롯한 다양한 탄소 소재를 제조한다.'라는 것을 대번에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우리가 가졌던 그 꿈이 5년여가 지나는 동안 심대하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다.


부족한 나를 믿고 잘 따라와 주어 무척 고마우면서도,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잘 개척하여 새로운 곳에서 연구원의 삶을 시작하게 되어 무척 자랑스럽다. 제자들을 배출하는 교수들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교수가 별로 부럽지 않다. 여기서도 충분히 넉넉한 재원과 장비를 가지고, 하고 싶은 연구 및 해야 하는 연구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고, 인재를 양성하여 배출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무엇보다도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새삼 KIST 전북에서 일할 수 있음에 무척 감사했고, 민정씨가 함께 해 주어 좋은 과학을 함께 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역시, 하느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만났을 때 헤어질 것을 생각하고, 헤어질 때 또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한다.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고대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