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내게 새로운 것들을 많이 일깨워준 해였다. 물론 인생의 한 과정이 매듭지어지고 새로운 과정이 시작되는 시기이기에 미지의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는 것을 예상 못한바 아니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위안으로 남는 것은 나이 서른에 Ph.D. 라는 것을 이름 앞이나 뒤에 붙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 어제 윤재와 얘기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나는 지금 한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가다가 왠지 더 전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있다. 내가 잘났다는 것도 이제는 내려놓았고, 내가 택한 길이 최선이라는 것도 내려놓은지 오래. 비록 이후의 일이 갑자기 잘 풀려서 또 곧게 나아갈수 있을지라도 잔인했던 을미년의 낭패감, 좌절감은 평생 잊지 않고 되새길 것이다. 교훈을 간략하여 명료하게 말하자면, 내 인생은 내 인생임에도 내가 주인이 되어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보니 그게 가능했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바로 우리가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왔던 '위인'이라는 것이었다. 위인이 아닌 범인으로서, 그리하여 많은 어른들은 그렇게도 신적인 존재의 무상한 초월성을 애타게 갈구했는가보다. 그래도 그 유한한 경계를 향해 열심히 달려온 결과 그만큼의 지경을 내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았는가. 이것으로 1차적인 만족을 누려도 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칭얼대본다.


이제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었던 보호막이라는 것이 없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은 단순히 체력은 저하되고 피부가 처지는 생물학적인 노화를 피하고 싶다는 순진한 바람이 아니다. 기실 그것은 자연인으로서 져야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유치한 유아적 소망에 지나지 않는다. 뭐 어쩌겠나, 시간은 흘렀고 나는 서른 하나가 되는 것을. 그저 좀더 감사하게 여기면서, 완전 포기하진 말고, 기회를 엿보며 이 회의주의에서 벗어나보자. 헬조선이라고 요약되는 이 사회, 서로를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혐오하는 데 낭비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야말로 '노답'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망령처럼 떠돌지만, 그럼에도 회심의 미소를 지을 날을 바라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