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 관련 실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내게 남은 과제는 중간 생성물의 순도를 높여 화학적으로 잘 정의된 물질들로 실험을 완결하여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는 달리 중간 생성물을 정제하는 과정이 여의치 않았다. 귀찮으면 관 크로마토그래피를 할까도 생각했는데 박막 크로마토그래피(TLC)를 찍어보니 관 크로마토그래피로는 도저히 바른 분리를 해내기 힘들어보였다.


한 주를 온전히 갖다 바쳐 열심히 분별 깔때기를 흔들어대며 이 짓 저 짓 별 미친 짓을 다 해봤는데, 어느 정도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100% 제거에는 번번히 실패했다. 그래서 약간은 좌절하고 있었을 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관련 논문을 좀 더 확장해서 검색하다가 1960년 네덜란드의 과학 저널 《Recueil des Travaux Chimiques des Pays-Bas》에 실린 아주 중요한 논문을 찾게 되었다.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니 여기서 말하는 과정은 내가 관찰하던 현상과는 다소 다르긴 했지만, 아무튼 정제를 위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바로 고분자 침전의 방식과 동일하게 용매 환경을 바꾸어 침전물을 만들어낸 뒤 걸러내면 고순도의 결정질 고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며 어제 불순물이 섞여 있던 내 물질들을 꺼내서 메탄올에 녹여봤는데 아주 잘 녹았고 이를 물에 부어버리니 우윳빛으로 변하면서 이내 상당량의 침전물이 만들어졌다. 이걸 걸러내고 물에 씻고, 다시 메탄올에 녹인 뒤 같은 과정을 반복하자 찐득이는 물질이 전혀 없는 고운 가루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진공 오븐에 넣어놓고 가열하면서 말렸더니 오늘 아침에 분석하기엔 충분한 양의 흰 가루를 통째로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중수소 치환된 메탄올에 녹여 NMR을 찍었더니... 만세! 처음에 얻었던 NMR 스펙트럼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매우 깔끔한 스펙트럼이었으니 곧 정제된 물질의 피크 3개와 메탄올 용매로부터 나온 피크 2개, 끝. 다다익선(多多益善) 스펙트럼은 이제 물러가라!


어제 주문한 반응물이 다시 들어오게 되면 대량으로 만든 뒤 정제해서 곧바로 실험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가지 문제가 더 있다. 불순물이 가득했던 예전 샘플은 톨루엔에 잘 용해되었는데 정제를 하고나니 얘들은 톨루엔에 안 녹는다는 사실... 하지만 큰 고비를 하나 넘겼으니 다음 고비는 이보다 더 쉽게 해결되리라 믿는다. 항상 덧붙이지만, 남들이 보면 간단한 유기 합성 실험이더라도 나는 이것을 통해 배운 게 너무나도 많아서 무척 뿌듯하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