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창단 리허설 때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악보를 보고 노래할 때 눈이 너무 바빠진다는 것이다. 한국어 가사가 적힌 악보를 보면 음표의 위치와 가사를 한 눈에 보며 노래하는 게 그리 크게 어렵지 않으므로 처음 보는 노래라도 수월하게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여긴 미국이므로 모든 가사가 영어로 적혀 있는데, 단지 악보 사이에 쓰여 있는 가사가 로마자라는 이유로 내 눈의 주의가 완전히 흩뜨려진다. 이 가사가 어떻게 발음될 지를 예측하느라, 그리고 음정이 어느 위치인지 파악하느라 두 눈을 재빨리 굴려대지만 곡의 빠르기가 빨라질수록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문자와 발음의 대응이 1:1 이 전혀 아닌 영어라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라틴어로 된 노래를 가끔 하게 되는데 그 때는 문제가 현저히 줄어드는 걸 보면...) 예를 들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 Holy Night)'과 같은 느린 노래는 악보를 보고 부르기 쉬우나 '기쁘다 구주 오셨네(Joy to the World)'와 같은 경우 대혼란에 빠져 가사도 못 읊고 음도 제대로 못 내는 상황에 이른다. 그나마 아는 노래들이라서 수월하지 여기서 처음 보는 노래들 같으면 처음 불러볼 때에는 차마 아무 말도 못하는 벙어리처럼 1절을 패스해야 한다.


거기다가 나는 베이스 파트라서 내가 따라가야하는 악보는 가사 밑에 그려져 있다. 우리는 보통 단선 악보에 익숙해져 있어서 가사가 악보 아래에 적혀있는 게 더 익숙하다. 물론 합창이나 중창을 자주 해 본 나로서는 가사가 악보 위에 적혀있다고 크게 당혹스러워하지는 않으나 역시 앞에서 말한 이유로 가사가 영어이다보니 이게 무척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더 큰 도전은 바로 순행(precession)할 때이다. 교회 중창단은 성찬례 시작시 교회 정문쪽에서부터 중앙 복도를 통해 입장하는 십자가 뒤를 따라 개회 찬송을 하며 순행하고 파송 예식 뒤 퇴장하는 십자가 뒤를 따라 폐회 찬송을 하며 순행하는데 대열을 맞춰 걷느라 주의가 한 번 더 흩뜨려진다. 이 때쯤 되면 대체로 곡을 외운 수준이 아니면 립싱크를 하며 걷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참. 그 외에 웃지 못소소한 실수도 간혹 있다. 오늘 연습의 경우, "judge with justice and truth"라는 가사가 있었는데 한 음절의 길이가 길어지면 하이픈(-)를 첨가하기에 ㅡ 마치 '오- 필승 코리아' 처럼. ㅡ 악보에는 "judge with just - ice and truth"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처음 악보를 보고 따라부를 때 나도 모르게 "judge with just ice and truth"라고 부르고 말았다. 졸지에 정의와 진리로 심판하시는 게 아니라 단지 얼음과 진리로 심판하시는 주님이 되셨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