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여정은 국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에서 시작되었다. 국회도서관의 규모와 장서가 어마어마하다고 듣긴했지만 투어 중 가이드의 설명은 대부분 국회 도서관 건물의 아름다운 장식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중간에 실제 열람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간이 있었지만 과연 도서관의 규모와 장서의 목록이 어떠한지 알아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국회도서관에 출입하는 이용자가 되는 것이겠지만 나같은 해외노동자(?)가 그런 자격을 갖출 리는 만무하기에... 우리 나라 국회 도서관도 꽤 큰 규모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에 가면 한번 꼭 방문해 봐야겠다. 워싱턴의 국회도서관처럼 신고전주의 양식의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과 프레스코화가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국회도서관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대접에 담긴 카페 라테와 크로크 무슈를 간단히 먹은 뒤 국립 기록물 보관소(National Archive)에 갔고, 거기서 대헌장(Magna Carta)과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 헌법 초안과 권리장전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 기록물들을 미국 초기 역사와 같이 견주어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데 ㅡ 연방이라는 체제로 효과적으로 국가 구성원들을 묶으려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압제를 걱정하는 개인들의 치열한 대결 아니었던가! ㅡ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선각자들의 입장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음을 상기하며 위의 기록물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면 얼마나 치열한 논의를 거친 뒤에야 이러한 기본적인 선언문들이 채택될 수 있었을지... 참 놀라운 일이다. 대한민국 건국 시기에도 수많은 다양한 의견들이 혼란스럽게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제헌 의회가 구성되어 수준 높은 헌법이 작성되어 채택될 수 있었는데, 나라의 기틀을 잡는데 개인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은 앞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Brookland 역으로 향했다. 이 역 근처에는 거대한 로마 가톨릭 성당이 있는데, 북미 대륙에 지어진 교회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했다. Basilica라는 이름이 붙은 성당들은 대개 거대한 돔이 상부에 얹혀 있는데, 이 성당도 그러했다. 외부에는 다양한 성인들의 석상이 조각되어 있었던 것을 빼면 그렇게 유달리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들은 없었지만 내부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장 최근에 지어졌으니 가장 현대적일 줄 알았는데, 가장 현대적인 기술을 십분 활용하여 고전적으로 내부를 꾸며놓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고전적이라는 것이 굉장히 투박한 그런 고전적인 게 아니라 매우 화려한 고전적인 양식을 말한다. 모든 천장 및 장식화는 모자이크로 만들어졌고 선명하고 화사한 색깔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형형색색의 대리석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기둥의 대리석 색깔이 너무나도 고급져서 '도대체 돈을 어마나 쳐바른 거야?'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성당 정 중앙의 돔 안쪽에 그려진 모자이크화는 보좌에 앉은 삼위일체와 성모, 그리고 다양한 성직자들의 모습을 빙 둘러 그려놓았으며 그 밑에는 니케아 신경이 영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개정된 전례 양식을 반영하듯 새로 지어진 성당에는 벽제대가 없었다. 성당 양측에는 수많은 성모상들이 모셔져 있었고, 증가한 히스패닉 가톨릭 신자들의 교세를 반영하듯 다양한 라틴아메리카 성모상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중간에는 중국식 복장을 한 성모 모자이크화도 있었다!


성당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드디어 빨래 및 건조를 완료했고, 근처에 있는 스포츠 바에서 버거와 맥주를 마시며 미네소타 와일즈의 아이스하키 경기를 TV로 지켜보았다. 1 피리어드였는데 2-1로 리드를 지키고 있었고 골을 넣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읍읍 질러대서 나도 모르게 민망해졌다. 워싱턴에 와서 미네소타 경기를 보고 환호하다니... 워싱턴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는 않았을까 스리슬쩍 걱정이 되어 1 피리어드가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무튼 워싱턴에서의 닷새를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 도시를 관광하라고 추천할 것인가? 내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무조건 YES 라고 힘주어 말할 것이다.


워싱턴 DC는 다른 미국의 대도시와는 굉장히 다르다. 우선 18세기에 새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프랑스인에 의해 계획된 계획도시이다. 따라서 여느 도시와는 다른 유럽풍의 느낌이 굉장히 진하게 남아 있다. 건물의 배치와 높이뿐 아니라 건물의 건축 양식도 그러하다. 옛날 미술시간에서나 배웠을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의 열주들이 지겹게 등장한다. 따라서 유럽풍의 도시 관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워싱턴 DC는 고전적 느낌의 도시 관광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 도시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점은 이곳에서 미국의 짧지만 강력한 역사를 몸소 체험하고 배우며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여기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 전쟁, 그리고 미국의 과학기술이 박물관과 공공건물의 형태로 남아 있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도시이다. 미국의 대단함을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이 나라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어떤 역사를 거치며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데 이곳에 와서 경험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성조기의 13개의 흰색, 빨간색 줄의 의미를 알고 싶으면 보스턴으로,

성조기의 50개의 별이 한데 모여있는 것의 의미를 알고 싶으면 워싱턴으로,

그리고 그 성조기가 유난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지 알고 싶으면 뉴욕으로 가라!


워싱턴은 미국 민주주의의 변영의 역사 그 자체이다. 이곳에서 닷새간 머물며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진작에 이곳을 알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랬다면 항상 하루이틀 머무는 데 그쳤을테니 오히려 이렇게 뒤늦게라도 여유있게 며칠간 이곳에 머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못본 것들이 여럿 있으니 그것은 훗날의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