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감사성찬례를 마치고나서 식료품점에 들러 장을 본 뒤 집에 와서 점심으로 오야코동을 해 먹었다. 약간 피곤한 것 같기도 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시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는데, 오늘 미니애폴리스에 연고를 둔 프로미식축구(NFL)팀인 미네소타 바이킹스(Minnesota Vikings)가 플레이오프 경기를 한다는 것을 이내 깨닫고 잠시 고민하다가 옷을 다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바깥에는 미네소타 경기를 응원한다는 뜻인건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어차피 플레이오프가 열리는 경기장에 가 봐야 이미 매진되어 있는데다가 암표라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빌테니 경기장 근처로 가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 근처에 있는 스포츠 바인 샐리스(Sally's)에 갔다. 풋볼 경기를 보러 혼자 바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 물론 혼자 바에 간 적은 많다. 풋볼 경기 때문에 간 적이 없다는 뜻이지... ― 바 직원이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바의 빈 자리 아무데나 앉아도 좋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바에 들어간 게 3시 10분 남짓. 나는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3시 40분에 시작하는 경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어느새 주변 자리는 모두 사람들로 꽉 들어찼고 모두들 미네소타 바이킹스 셔츠나 모자 등을 입고 온 열혈 팬들이었다. 특히 내가 사는 지역이 학교 근처인지라 학부생들로 보이는 어린 남자 애들이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미네소타 바이킹스 응원을 요란하게 하며 분위기를 한껏 달구고 있었다.


1, 2 쿼터만 해도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상대편인 뉴올리언스 세인츠(New Orleans Saints)의 공격은 번번히 저지당했고 특히 미네소타에서 두 번이나 가로채기에 성공하면서 분위기가 처음부터 바이킹스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두 번의 터치 다운과 한 번의 필드 골을 성공시키면서 전반 종료시 점수는 이미 17-0. 바 안에서는 머리 위로 박수를 치며 스콜(Skol)을 외쳐대는 소위 스콜 챈트(Skol Chant)가 빈번히 행해지고 있었다. (참고로 스콜은 스칸디나비아쪽에서 온 말로 우리 말로 표현하자면 '파이팅!' 정도가 되겠다.)


일방적인 게임 흐름은 3쿼터가 되어 뒤바뀌었고, 세인츠가 터치 다운을 하게 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다. 4쿼터 중반에 이르러 세인츠가 세 번째 터치 다운을 할 때까지 바이킹스가 필드 골 하나 만회에 그치면서 점수는 20-21로 역전. 생방송 해설가가 '이 소란스러운 경기장이 쥐 죽은 듯 엄청 고요하네요'라고 할 정도로 바이킹스 팬들이 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때 바이킹스가 자신들 역대 플레이오프 경기 중 가장 먼 필드골인 52 야드 필드골에 성공하면서 3점을 획득하며 23-21로 재역전. 이 때만 해도 바 분위기는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세인츠가 네 번째 터치다운에서 회심의 반격을 날려 필드골을 넣을 만한 영역으로 공을 안전하게 패스시킬 때까지는 말이다. 안전하게 점수를 지키며 승리를 일궈낼 줄 알았던 사람들은 탄식을 내뱉으며 침묵하게 되었고 손으로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인츠가 필드골을 넣어 23-24로 재재역전극을 선보였고, 이 때 공격권을 넘겨 받은 바이킹스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30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패색이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4쿼터 마지막 10초를 남기고 일어났다. 바이킹스의 쿼터백(quarterback)인 케이스 키넘(Case Keenum)이 오른쪽으로 달려나가던 스테펀 딕스(Stefon Diggs)를 보고 회심의 패스를 날렸는데, 게임 종료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그랬는지 세인츠 수비수들의 움직임이 영 굼떴다. 운좋게도 공이 필드 위로 떨어지지 않았고, 딕스가 공을 잡은 위치가 사이드라인 안쪽이었기 때문에 인플레이 상태. 딕스는 미친듯이 골라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경기 종료 1초도 안 남은 시점에 그는 터치 다운을 성공시키고 말았다. 기적같은 승리, 말도 안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내가 있었던 스포츠 바 샐리스 말고도 미네소타 전역의 TV 생중계를 보던 모든 바, 가정집, 건물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기적을 바라고 있던 팬들조차 자신들의 눈을 의심케 만든 그 기적이 진짜 나타난 것이었다.


사실 나는 바이킹스의 패배를 예감하고 모자를 눌러 쓰고 바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보고 있긴 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마지막 4초가 정말 믿을 수 없었는지라 나도 한동안 어안이벙벙해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싶었다. 한 2초 뒤에 모자를 벗고 바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미친듯이 환호하며 '스콜'을 외쳐대는 것을 인식한 뒤에야 비로소 경기에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극적인 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의자, 탁자 위에 올라가서 환호했고 손에 든 것을 모두 집어던지며 짜릿한 역전승을 자축했다. 모든 이들이 박수를 치며 하이파이브를 외쳤고, 자신들이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를 말들을 미친듯이 내뱉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친 분위기, 비현실적인 순간, 광란의 현장이었다.


오늘 경기를 위해 샐리스에 와서 시간을 보내길 정말 잘 했다. 흔치 않은 역대급 경기를 이토록 즐겁고 흥겹게 관람할 수 있었던 게 참 행운이었다. 아참. 바를 나서려는 찰나 바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직원이 '오늘 경험이 어땠나요?'라고 묻길래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답해주었다: 'It was epic!'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