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백색의 크리스마스 연휴]
Date 2009.12.28


크리스마스 연휴는 24일 자정부터 27일 자정까지였다. 놀랍게도 이번 연휴 동안 내내 눈을 보았다. 하얀 눈. 그렇다. 스키장에 갔다.

24일~25일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이모 가족과 함께 무주에 놀러갔다. 태어나서 무주 리조트에는 처음 가는 것이었는데, 무주가 이렇게 가까운 곳인지는 전혀 몰랐다. 대전-통영간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는데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도착했을 때는 이제 막 25일 0시가 되는 때였는데, 스키장에서는 폭죽을 터뜨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워낙 지난 한 주간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얻느라 몸을 힘들게 굴려서 그랬는지 얼마 안 있어 자리를 깔고 세상 모르게 자기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모두 사우나로 향했다. 스키를 타기 전에 사우나에서 몸을 노곤하게 만든다는 것이 썩 좋은 행보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아무튼 스키장에서 피로를 더 쌓으면 그 다음날 우리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일단 있는 피로부터 풀자는 취지에서 그리로 향했던 것 같다. 옆에서는 스키를 타고 쌩쌩 내려가고 있는데 우리들은 그 옆의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참 이색적인 장면이었다. 옆에는 눈이 덮인 슬로프, 여기는 섭씨 40도 근처의 온탕. 두껍게 스키복을 입은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하얀 입김을 토해내는 나는 수영복 한 장만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나와 동생, 그리고 이종 사촌 둘과 함께 스키장에 나선 것은 2시부터 였다. 2년만에 스키장을 가는 것이었고, 정식 교습을 받지 않아서 스키를 타는 폼이나 실력에서 현저하게 뒤떨어져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중급 수준의 슬로프를 안전하게 타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하강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었다. 몇 번 넘어지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무주 리조트의 중급 코스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랜만에 타는 스키였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리프트를 기다리는 동안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고, 이날은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기분은 한층 더 들떠 있었다. 그렇게 오후 내내, 그리고 눈을 고르는 작업이 끝난 이후부터 밤 9시까지 그렇게 격렬히 스키를 탔다.

사실 크리스마스 때 교회와 무관하게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상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전야제 행사를 준비하느라 12월이 내내 바빴고, 전야제 이후에도 청년부 나머지 행사를 진행하고 다음날 예배에 참석해야 했기에 항상 크리스마스날에는 정작 할 일없이 집에서 쉬기만 했다 ㅡ 물론 내가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아서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이 모두 작정하고 아예 크리스마스 이브에 무주로 내려왔던 것이다. 음.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참된 성탄절의 의미를 지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점이 마음에 걸리긴 하다. 정말 세속적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낸 2009년이었다.

다음날 우리 가족은 일찍 일어나 바로 상경했다. 내가 재촉한 것 같아서 부모님께 다소 죄송스러웠다. 오후 1시에 친구들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정작 만난 것은 1시 반이었다. 처음엔 스케이트장에 가려고 안양 공설운동장을 찾았는데, 김연아 효과 때문인지 사람이 가득 차서 더 이상 입장권 발권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찾다가 갑자기 스키장 이야기가 나왔다. 강원도 원주의 한솔오크밸리에 29,000원에 야간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저가 상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급(急)여행의 명수인 우리들은 바삐 행동하기 시작했다. 각자 집에 돌아가서 스키 장비를 챙기고, 나는 집에 돌아가 긴급하게 G마켓을 통해 3명분의 스키 야간권을 구매했다. 5시에 다시 만나 출발했는데, 그 시간동안 어찌나 급박했던지 확인전화만 몇 통을 했는지 모른다.

무주에 갔다오고 나서 지하 주차장에서 잠시 쉬고 있던 차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번에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신갈 분기점을 무시한 채 죽 문막IC까지 가는 것이었다. 벌써 해는 서산 너머 져 날은 어두었고 전날보다 기온이 급강하한지라 히터를 세게 틀지 않으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용인 근처에서 공사로 인해 잠깐 막혔던 것을 빼면 순조롭게 차를 몰았고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고 문막IC에서 나와 산골짜기를 헤맸음에도 7시 반에 스키장에 도착하는 기적을 일구었다. 8시 반이 되자 이미 우리는 변신을 마치고 리프트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나는 너무 신기했다. 24시간 전에 분명 무주에서 이 짓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 짓을 또 하고 있다니. 친구들 모두 황당해 하면서도 즐거워 했던 이유는 지금 그 시간에 스키장에 있을 줄은 그날 점심 때조차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차량(자가용)과 정보(29,000원의 저가 상품), 그리고 가고자 하는 열정이 순수히 결합하여 탄생한 그야말로 성공적인 급계획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정말 미친 듯이 탔다. 밤 8시 반부터 새벽 1시가 거의 다 되도록 스키를 탔다. 한솔오크밸리의 슬로프는 무주리조트의 그것보다 훨씬 가파른 것이었다. 똑같이 '중급'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것은 중급이 아니라 거의 중상급 수준이었다. 처음에 리프트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갔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중급이야!!!" 한솔오크밸리에서는 정말 많이 넘어졌다. 양 무릎에는 멍이 들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엉덩이가 욱씬거린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상급자 코스도 도전해서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탈 수 있게 되는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다. 중요한 것은 경사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것이었다. 물론 스키 타는 자세를 좀 더 유연하고 '간지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스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힘들지 않은 수준에서 이만 만족하여 그치는' 태도를 타파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할 수 있겠다. 정말 가파른 그 경사와 낮은 설질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ㅡ 망할 스노보더들이 망쳐놓은 그 설질이란!! ㅡ 속도를 조금이나마 느끼며 영하 10도의 밤공기를 가르는 기분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재미있었다. 더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행이었던지라 짜릿함이 배가되었다.

새벽 1시가 되어 다음날의 각자 상태를 위해 더 이상의 유희는 그만 두는 것으로 하고 서둘러 정리하여 차에 다시 올라탔다.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으로 인해 자동차는 꽁꽁 얼어붙었고 유리에는 성에가 잔뜩 끼었다. 공회전을 10분이나 하고 문막 쪽으로 나가 대충 모텔을 잡고 거기서 쉬기로 했다. 가능하다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안양으로 일찍 가서 거기서 쉴 수도 있었겠지만 이틀이나 강행군을 펼쳐 피곤한 내가 어두컴컴한 새벽의 고속도로를 100km/h 이상의 속도로 헤치며 (그것도 동승자들은 모두 꾸벅꾸벅 조는 상황에서) 안양으로 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기 때문에 원주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성공적인 여행이었다고 자평한 뒤 잠시 수다를 떨다가 잠을 청했다.

안양에 돌아와서는 원주에서 대충 씻었던 몸을 다시 씻고 교회로 향했다. 오늘은 2009년 마지막 주일예배이자 임은택 목사님의 고별예배이고, 또한 주일학교 수료예배였다. 도착 시간이 2시를 넘기는 바람에 청년부 예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전도사님 죄송해요ㅠ). 교회를 가려고 차를 끌고 밖에 나와보니 새하얀 함박눈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세상에, 조금만 늦게 출발했다면 눈 덮힌 영동고속도로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크게 고생했을 것이 뻔했다.

예배 후에는 오랜만에 ㅡ 거의 5년만에 ㅡ 고등학교 동창인 성민이를 봤다. 녹두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 갈매기집/부속고기집인 서래에 가서 허기를 채웠다. 성민이는 그대로였다. 목이 약간 더 튼실해진 것을 빼면 정말 똑같다. 우리 모두 나이는 조금 더 먹었고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군대에 다녀온 자랑스런 예비역들이지만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교복만 입혀놓으면 다시 등교한다 해도 썩 어색하지 않을 듯 싶었다. 한창 고등학교 추억을 곱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말 우스운 이야기들, 한동안 잊었던 이야기들이 많았다. 성민이는 생각보다 자세히 기억하는 게 많았다. 1학년, 2학년 이렇게 2년간 같은 반이었는데 특히 최종구 선생님 ㅡ 별명이 中村(なかむら) ㅡ 의 특이한 말투와 어록을 재현하는 부분에서 정말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사실 고등학교 때에 백 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지만 정작 졸업 이후에 살갑게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고, 또 생각해보면 그 모든 사람들과 매우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때론 소모적인 일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 이 곳에서 정말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아니더라도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애들은 뭔가 덜 어색하고, 더 친근하며, 그리고 공유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 금방 화기애애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과 수년간의 공백은 있었다. 그러나 왠지 고등학교 친구들은 그 수년간의 공백 기간동안 서로의 관계에 '방부제 처리'가 되지 않았나 싶다. 찬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더라도 다시 꺼내 열어보면 일품인 조미료? 사실 서로를 친한 사람으로 여기지 못하고 수 년을 보내게 된 것은 서로에게 미안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내 경우, 고등학교 동창들에게는 그런 서운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성민이는 안 그랬던 것 같다. 언제나 여전한 성민이를 보니 정말 반가웠다.

으아. 쓰고 나니 정말 길다. 그런데 이 3일간의 여정을 끝까지 지켜본 것은 다름 아닌 눈이었다. 스키장의 눈, 거리의 눈, 머리 위에 잠깐 쌓였던 눈. 나는 눈 위를 달리고, 눈 위를 걷고, 그리고 눈은 내 위에서 휘날렸다. 그야말로 백색의 크리스마스 연휴였다. 당장 오늘부터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마음 뿐 아니라 머리마져 새하얗게 된 것이 아닌가 불안하다.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