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자기 결정]
Date 2010.01.21


광결정(photonic crystal)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져 현재 많은 수의 논문이 출간되고 있다. 우리 실험실에서 많이 사용하는 블록 공중합체를 광결정에 응용할 수 있는데, 이는 블록 공중합체가 반복적인 구조를 잘 나타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광결정은 자연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나비의 알록달록한 무늬가 대표적이다. 나비 날개에는 색깔을 내는 염료 분자가 없고 오직 복잡한 3차원 미세반복구조가 있을 뿐임에도 그렇게 영롱한 색깔이 나타나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이것은 다 반복구조에서 기인하는 광 밴드 갭(photonic band gap)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 파장은 반사를 많이 하고, 어떤 파장은 투과를 많이 시킴으로서 만일 가시광선 영역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물질이 색깔을 띠게 된다고 한다.

대학원 들어와서 아직 별다른 실험에 착수하지 않았던 1, 2월 어느날에 ashcroft/mermin의 고체물리학 책을 다시 한 번 정독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실험실에서 블록 공중합체를 다뤄 광결정을 만드는 실험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거기에는 반복적 구조가 중요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고체물리학 책을 읽다보니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를 양자화한 '광자(photon)'를 이용한 것이 광결정이라면, 스핀 파동(spin wave)를 양자화한 '마그논(magnon)'을 이용한 것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식이라면 다른 준입자(quasiparticle)들 ㅡ 예를 들면 폴라론(polaron) ㅡ 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면 특정 스핀 파동만 투과시키고 다른 스핀 파동은 반사시키는, 그래서 스핀트로닉스 연구에 좋은 '꺼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Advanced Materials 지에 실린 리뷰 논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목에는 떡하니 magnonic crystal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역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비슷비슷하다. 아직 이 분야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많지 않고, 게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아직 여기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언젠가 다른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면, 이 분야를 조금 더 이해해보고 싶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자기 결정 분야는 걸음마 단계라서 구글에 '자기 결정'이라고 치면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self-determination) 것'과 관련된 내용만 나오고 있으니 만일 확실한 연구 결과를 낸다면 이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으하하하. 물론 자기 결정에 고분자를 쓰는 건 별로 추천할 만한 일도 아니고 잘 될 리 만무하지만, 또 모른다. 몇 년 후에는 어떤 물질이 등장해서 이걸 가능하게 해 줄지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별 일을 다 하고 있으니까.

다시한 번 느끼는 거지만, 물리를 전공하길 잘 했다. 그리고 화학부 대학원으로 오길 정말 잘 했다. 지금 몸 담고 있는 실험실에 진학하길 너무나도 잘 했다. 후회는 없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