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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다음날인 목요일, 봉동읍 어딘가에 있는 '유케이축구교실'에 문자를 보냈다. 아, 거기에 그런 시설이 있다는 사실은 작년 10월에 만경강변을 따라 달리다가 우연히 지나치면서 알게 되었다. 올해 초에 한 번 카페를 검색해서 가봤다가 축구교실과 카페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알게 되었고. 아무튼 SNS에 원장님의 전화번호가 있었기에 그리로 문자를 이렇게 보냈다:
안녕하세요? 호기심이 생겨서 SNS 계정을 보고 연락드립니다. 축구를 평생 거의 해본 적 없는, 이제 곧 마흔이 가까워지는 직장인인데요. 혹시 이런 생초보 성인을 위한 축구 교육도 있을까요? 막 현란한 기술이나 슛은 바라지도 않고, 아주 기본적인 달리기(?), 드리블, 패스 이런 거라도 배워보고 싶은데, 가능할는지요? (참고로 남성입니다.)
생각보다 답변은 친절했고, 무려 1회 무료체험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주 수요일, 그러니까 그제 방문하겠다고 했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니 간단한 복장과 풋살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풋살화? 축구화는 아니고 풋살화는 뭐지?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축구화와 풋살화는 신발 바닥 아래에 튀어나온 부분, 그러니까 스터드(stud)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 TF는 뭐고 AG는 뭐고 FG는 무엇인가? 그렇게 때아닌 공부 아닌 공부를 마치고 나서야 뭘 사야 할지 알게 된 나는, 최근에 러닝화를 275 mm 짜리를 신으니 너무나도 편하게 뛸 수 있었단느 사전 지식에 의거, 당근 앱으로 혹시 275 mm 짜리 풋살화를 파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사이즈의 풋살화를 당근에 올린 사람이 있었고, 나는 금요일에 바로 그 분을 직접 만나 뵙고 풋살화를 구입했다. 풋살화를 직접 대면 거래를 한 곳도 익산에 있는 한 실내풋살장이었는데 ㅡ 나는 세상에, 그런 시설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몰랐다. ㅡ 판매자가 8시부터 풋살을 하기로 해서 거기서 보자고 한 것이었다. 역시, 풋살을 즐기는 사람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내놓은 물건이라면 신뢰할 만하겠다 싶었다. 자기는 '발볼러'라서 이 신발이 안 맞아서 부득이하게 내놓게 되었다고 했는데, 발볼러가 뭔 말인가 싶었지만 그 분이 가리키는 자신의 발등으로 시선을 옮기고나서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분은 발등에 이두근을 키우시는 분임에 틀림없었다.)
아무튼 풋살화도 준비되었고, 그제 처음 축구교실에 가 보았다. 실외풋살장을 대여한 사람들이 한창 풋살을 즐기고 있었는데, 오늘 수업을 맡은 코치가 나를 실내풋살장으로 인도했다. 그날따라 사람이 적어 참석한 사람은 나와 다른 한 분, 달랑 두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코치는 아주 성심성의껏 지도했다. 나 혼자 수업을 한다면 쉬운 걸 했겠지만, 축구를 즐기신다는 분도 같이 와서 수업을 하니까 모든 걸 내게 맞출 수는 없는 노릇. 아무튼 처음 10분간은 라바콘과 막대기, 접시콘, 그리고 장애물이 열지어 있는 곳을 아주 거침없이 빠르게 뛰어다니는 것을 시키는데, ∞ 형태로 돌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접시콘 왼쪽 오른쪽 움직였다가 장애물을 점프해서 넘고, 무슨 게처럼 옆잰걸음으로 라바콘 사이를 막 뛰어다니는데 아주 초장부터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축구'에 운동을 맞춰 놓고 계측을 시직한 가민(Garmin) 시계는 심박수가 일시적으로 존 5를 돌파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인사이드로 하는 패스를 알려주는데, 세상에 그렇게 골반을 잘 고정하면서도 자세를 낮추고 발끝에 힘을 주면서 버선코처럼 약간 세워두고 공의 중앙 부분을 정확하게 건드려 왼발끝이 향하는 방향으로 바르게 공을 보내는 게 이렇게 '생각할 게 많구나'하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다들 그냥 손쉽게 발로 툭툭 차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처음에 패스를 할 때는 공이 안쪽 발 아무 곳이나 맞고 다리는 그냥 힘없이 설렁설렁 움직이고 발끝에 힘을 주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서 공이 아주 맥없이 와이파이 모습 마냥 아무런 방향성 없이 굴러가곤 했는데, 그래도 마칠 때쯤 되어서는 '이렇게 가는 것이구나'라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는 왼발, 오른발 써 가면서 패스를 해야 하는데 왕초보자인 나는 오른발로 다루는 것조차 버거운 편이라서 오른발만 연습했다.
인사이드나 아웃사이드로 공을 툭툭 건드리면서 몰고 가 일정 간격으로 놓인 접시콘 사이를 통과하는 훈련도 진행했다. 진짜 몸개그가 따로 없었다. 뒤에서 시연을 볼 때에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정말 공은 내 몸에서 그렇게 한없이 멀어지려고 작정했나보다. 공을 어느 정도로 건드려야 내가 다룰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보니 안 그래도 정확한 발 위치로 공을 건드리는 것도 어려운데 세기 조절과 민첩한 자리 이동도 되지 않으니 이게 될 턱이 있나. 그래도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왼쪽을 바라보면서 보낸 공을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밀어내는 일종의 페인팅 동작 연습, 그리고 이것의 확장판으로 드리블 하다가 앞에 놓인 (수비수 모형의) 수직 막대기를 피해 인사이드로 왼쪽으로 공을 보낸 뒤 앞의 페인팅 동작을 통해 오른쪽으로 밀어낸 뒤 슈팅을 하는... 글로 표현하다보니 굉장히 복잡한데, 사실 누구나가 아는 그런 동작을 훈련했다. 물론 왕초보인 내가 잘 할 턱이 없는 건 분명하지만, 코치는 내게 그렇게 나비처럼 폴짝폴짝(!)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무게중심을 앞으로 쏟고 발을 밀면서 동작을 해야 한다고 했다. 드리블도 발끝이 아닌 발등으로 밀면서 해야 한다고. 아니 이런 사실들을 대체 '배우지 않은' 친구들은 어떻게 알았던 거야?!?!
그렇게 1시간여 진행된 수업은 기념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가르쳐주는 척 하다가 공 주고 '한번 플레이 해 보세요~' 이렇게 하는 거 아닐까 좀 걱정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름의 기본기를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사실 내 실력이 어떤 수준이든 간에 기본적인 요령에 대해 이것저것 '학습'하게 하는 수업은 내가 바라는 방향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날 문자를 보내 축구교실에 등록하겠다고 말했다. 주 1회.
그런데 사실 이게 끝이 아니다. 실은 목요일, 그러니까 어제 연구원 내 축구 동호회에 처음 나가 봤다. 이것도 다 내가 축구교실에 나가 볼 계획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를 축구 동호회 단체 채팅방에 초대한 모 박사의 농간(?) 때문이지만, 아무튼 23명이나 모여 운동장 전체를 사용하는 축구 경기를 나같은 생 초짜가 뛰어보게 되었다. 경기장에서 축구공을 만져본 것은 아마 18년 만이며, 인조 잔디 구장에서 뛰어본 것은 생애 최초의 일이었다. 전날 배웠던 것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혹여라도 공이 내게 들어오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할 일이라고는 열심히 돌아다니는 일밖에는 없었지만 ㅡ 어제 1시간 20여분의 경기 중 6.8 km 정도를 뛰어다녔다. ㅡ 그래도 기본기를 익히고 좀 더 경기장을 보는 시야를 넓힌다면 욕먹는 일은 덜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해 봤다. 물론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공을 요리조리 컨트롤하는 저 20대 학생들보다는 한참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더 많은 연구원들과 인사를 하며 좀 더 같이 할 시간을 갖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었다. 뭐, 내 지도학생들도 아마 축구에 젬병인 지도박사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최근에 하프 마라톤을 위해 열심히 달리며 체력을 기른 덕분에 그나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70~80분의 경기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5년 전의 나라면 20분 뛰고 그냥 백기를 들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이 마흔이 되어 축구를 한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황당한 시도일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흔이 가까워져서야 인생 최고의 체력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내게는 지금이야말로 이런 격렬한 팀 스포츠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적기(適期)이다. 이렇게 취미가 하나 또 늘어나는 것인가. 시간이 날 때 운동을 하는 것은 틀린 게 없다고 그랬으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욕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잘 배워봐야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