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아파서 침상에서 골골대다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로 미국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 감사성찬례 영상을 찾아보았다. 바로 올해 11월 1일에 있었던 예배인데, 미국 성공회의 제27대 의장 주교(Presiding Bishop)로 취임하게 된 마이클 커리(Michael Curry) 주교의 착좌(着座, installation)를 기념하기 위해 워싱턴 대성당에서 기념된 감사 성찬례였다.


미국 성공회는 전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자매 교회들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 관점을 견지하는 교회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성공회 공동체의 본산인 잉글랜드에서는 2015년이 되어서야 여성 주교 서품이 인정되었으나 미국은 이미 1989년부터 부터 여성에게 주교품을 주었으며, 실제로 2006년 미국 성공회의 제26대 의장 주교로서 여성 주교였던 캐서린 제퍼츠 쇼리(Katharine Jefferts Schori)가 선출된다. 여성 주교가 한 지역 교회를 대표하는 의장 주교가 된 것은 성공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의장 주교로서 흑인 주교가 임명되었으니, 사상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Barrack Obama) 임기 중 흑인 의장 주교의 탄생은 매우 고무적인 경사라고 할 수 있겠다. 더구나 흑백 인종갈등이 고개를 다시 드는 요즘 미국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 또한 작지 않다 할 수 있겠다.


마이클 커리 주교의 착좌기념 감사성찬례는 3시간 반이 넘는 매우 긴 예배였으나 순서 하나하나가 모두 흥미로웠다. 전통적인 예전(禮典)과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예배, 서로 다른 인종과 언어가 화합하는 예배, 교파와 종교의 다름까지도 포용하는 예배, 그리고 무엇보다 엄숙하지만 저녁밥상 앞에서 벌이는 잔치같은 예배. 이 모든 것들이 성공회의 모토인 성서(Scripture), 전통(Tradition), 그리고 이성(Reason)을 내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점들을 기억하면서 보면 예배의 감동이 더욱 배가될 것이다.


1. 예배 전에 전주는 종(carillon), 오르간, 그리고 합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합창단의 찬양은 매우 놀라울 정도로 힘이 넘치며 자유롭다.


2. 성직자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올 때 부르는 스페인어 노래의 제목은 '몬타냐(Montaña)'로 스페인어로 산이라는 뜻이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Si tuvieras fe como un grano de mostaza (네게 만일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Esto lo dice el Señor (이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Tú le dirías a la montaña (너는 산을 향해 말할지어니)

Muévete, muévete (움직여라. 움직여라.)

Y la montaña se moverá (그리하면 산은 움직일 것이다.)

Se moverá, se moverá. (움직일 것이다. 움직일 것이다.)


3. 또한 마지막 성직자 순행 중에는 토착 미국인, 곧 인디언들의 음률과 악기로 찬양하는 여성 세 명이 등장하는데 매우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4. 착좌 대상 주교는 주교 지팡이인 성장(聖杖, crosier)을 들어 닫혀 있는 성당 문을 세 번 두드리고 이에 성당의 사제가 문을 열어 주교를 맞이하는데, 이러한 예식은 교회 문을 통해 세상과는 성별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5. 세례수(洗禮水)를 뿌리는 예식은 신자들의 세례를 상기시킴으로써 신앙을 다시 굳건히 세우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불리는 노래는 'Wade in the Water'로 매우 유명한 흑인 영가.


6. 주교가 자리에 앉는 행위는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권리의 취득을 상징한다. 전임 의장 주교의 성장을 건네 받는 것 역시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권리의 이양을 상징한다.


7. 총 네 명의 다른 교파 및 종교 관계자들이 축복기도를 진행하였다.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유다교 랍비 스티브 구토우(Steve Gutow), 그 다음은 캐나다 성공회 대주교이자 수좌 주교(Primate)인 프레드 힐츠(Fred Hiltz), 그 다음은 북미이슬람협회(ISNA)의 임원인 모하메드 엘사누시(Mohamed Elsanousi) 박사,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북미 모라비아 교회(Moravian Church)의 관구장회의의 의장인 엘리자베스 밀러(Elizabeth Miller) 목사였다.


8. 제1독서(이사야)는 영어로, 제2독서(요한계시록)는 스페인어로, 그리고 복음서(마태오의 복음서)는 토착 미국 원주민들의 언어로 읽혔다.


9. 성만찬 기도 때 주교와 회중이 나누는 인사는 스페인어로 진행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