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어제 새벽 5시쯤, 시차적응으로 고생하는 것조차 이제는 고생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요즘에는 새벽 4시가 되기 전에는 일어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게 일상처럼 되었다.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무료한 새벽시간을 보내던 그 때, 갑자기 핸드폰에 울리는 알람소리. 뭔가 '그것'일 것 같다는 느낌이 엄지 손가락을 훅 스치고 지나갔다. 재빠르게 상태표시줄을 내려 알람의 정체를 확인하니, 역시나 메일이었다. 그리고 발신인의 이름도 너무나도 이젠 익숙해진 인사팀 직원분. 기대하는 마음 3/4, 걱정되는 마음 1/4를 뒤로 한 채 받은편지함에 갓 도착한 메일을 불러들였다.


귀하께서는 2018년도 KIST 상반기 연구부문 공개채용 종합면접 전형에 합격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2년간 미네소타 대학에서의 박사후연구원 과정에 마침표를 찍게 해 줄 합격 메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 다소곳이 엎드려 기도를 올리고 바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합격 소식을 전해 주었다. 여기서 잠깐, KIST는 한국과학기술원(韓國科學技術院, Korean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의 영문약칭으로 '키스트'라고 다들 부른다. 이 기관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은 과학기술로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미래를 준비해가는 연구소 입니다. KIST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부출연연구소이자 종합연구소로 많은 정부 출연 연구소들을 탄생시켰고 출연연의 맏형으로서 지난 50년간 대한민국 과학기술연구를 견인하며 국가 발전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 웹사이트)


한국과학기술연구원(韓國科學技術硏究院, 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KIST)는 1966년 설립된 대한민국의 종합연구기관이다. 한국에 설립된 연구소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훌륭한 연구소이다. (위키백과)


모든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최종 보스. (나무위키)


KIST와의 인연은 대학원 박사과정 첫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태양전지 제조를 위한 나노구조 기반 전극 제조 과제는 KIST와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박사과정 초년생은 뭐가 뭔지도 모른채 어쨌든 상월곡역 근처에 있는 KIST라는 곳에 갔더란다. 이후 3년간 KIST와는 지속적인 관계를 쌓았고, 과제가 종료됨과 동시에 KIST에 갈 일은 없었다.


그랬다가 KIST의 상빈기 연구부문 공개채용 공고가 뜬 것을 보고 지원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지난 6월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KIST 로고가 반갑기도 했지만 내가 여기에 지원할 적합한 인물인가 하는 걱정이 조금 들기도 했다. 당시에는 몇몇 대학에도 임용 지원서를 냈던 때였고, 일부 대학에서는 이미 탈락이 확정되어 '감사를 담은 사과의 메일'을 몇 차례 받고 있을 때였다. 공개채용 공고를 읽어본 뒤 내가 지원할 곳은 오로지 전라북도 완주에 소재한 분원(分院)인 복합소재기술연구소라고 생각했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북분원 모집단위에 지원하였다.


6월 초순, 온라인으로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했을 때의 느낌은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어쨌든 수월하게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어서 후련하다!'라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KIST는 이번 상반기 지원 중 가장 마지막에 진행된 지원이었고는지라 자기소개서, 연구계획서 및 각종 지원 서류가 어느 정도 다듬어진 상황이었고, 일사천리로 모든 것을 KIST의 연구분야에 초점에 맞추어 지원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당시 한국에 다녀온 모든 박사후연구원들이 입을 모아 얘기해 주었던 것은 최근 취업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어 힘들어하는 박사과정생 및 졸업생들이 많더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경쟁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바 나보다도 소위 스펙이 훨씬 좋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약간의 비관적인 전망이 나를 뒤덮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원을 마다할 정도의 무력감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쉽지 않은 경쟁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한창 무수당 알코올 기반의 전기방사 실험을 진행하고 있던 6월 발, 별안간 KIST로부터 서류 통과 메일이 전달되었다. 주변에는 굉장히 잘 된 일이라며 축하를 해 주시는데 나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서류가 통과되어 영상 면접 전형 응시자가 되었다고? 당장 그날부터 그 다음주에 있을 비디오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발표자료를 만들고 발표를 연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비디오 면접을 본 날... 이미 이전 하루 이야기에 적은 바 있지만 굉장히 나 스스로서는 실망스러운 면접이었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내가 하고싶은 말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그 영상 면접이 통과되어 최종 대면 면접 전형 응시자가 되었던 것이다!


급하게 타고 온 서울행 비행기. 7월 20일의 안양은 굉장히 더웠다. 그리고 한국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화요일에 진행된 종합면접. 면접 시간은 11시 45분이었지만 상월곡역에는 이미 10시쯤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면접을 준비했다. 사실 그렇게 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사 소통에 제약이 있는 영상 면접보다는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대면 면접이 더 낫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는 영상 면접에서 행한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면접대기장에 들어갔다. 먼저 와 계신 분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차분히 면접시간을 기다렸다.


면접은 굉장히 훈훈하게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몇 개 나왔지만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내가 하고자 싶은 바를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었고, 적절한 표현과 표정을 곁들이며 면접관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을 드렸다. 5분의 짧은 발표, 그리고 10분의 약간 긴, 그러나 역시 짧은 질의응답이 끝났고 나는 거의 7년만에 방문한 KIST 서울 본원의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그날 굉장히 더웠는지라 밖에 나오자마자 땀이 줄줄 흘러나왔지만 기분은 그처럼 상쾌할 수가 없었다. 면접 분위기가 정말 좋았기에 어쩌면 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조금은 품게 되었다. 면접 결과는 면접 다음 주에 나온다고 공지되었기에 나는 미니애폴리스에 돌아와서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다.


시차 적응 실패로 정신이 없었음에도 나는 수요일의 이사를 준비하느라 하루 종일 고되게 왔다갔다 해야 했고 ㅡ 물론 화요일에 US Bank Stadium에서 개최된 토트넘 홋스퍼와 AC 밀란의 International Chamipions Cup은 내게 스스로 허락한 일탈과도 같았다 ㅡ, 수요일 이사 이후에도 시차 적응은 해소되지 않아 매일 4시간도 채 못 자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랬던 내게 들려온 달콤한 소식 ㅡ 바로 합격 통지였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고, 특히 아버지께서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아들된 사람으로서 참 기분이 좋다. 과학기술 연구를 위해 세워진 KIST에는 연구를 위한 인프라가 잘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연구원의 삶을 지속하기에 참 좋은 장소이다. 실력 있는 선후배 동료들이 많기에 서로 협력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연구 외에도 다양한 나눔 활동 등을 통해 역량을 발전시키고 꿈을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결정적인 흠이라면 서울에서 다소 먼 전라북도 완주군에 연구소가 있다는 것이지만, 서울에서 14시간 시차가 차이나는 미니애폴리스에서도 아무 부족함 없이 지내왔던 나로서는 오히려 높은 집값과 교통체증, 환경 문제에 신음할 것이 확실한 서울 근교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서울에서 다소 떨어진 ㅡ 그러나 생각해보면 3시간이면 닿으니까 그렇게 멀지도 않은 ㅡ 동네에서 지내는 것에는 아무런 거리낌도 거부감도 없다. 오히려 차분히 내 생활을 가꾸며 연구에 매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아직은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일뿐 추가 절차들은 남아 있다. 그러나 큰 무리 없이 잘 진행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제 남은 것은 이곳에서의 일을 잘 정리 및 마무리하고 같이 연구에 동참한 대학원생들에게 여러 가지 기술들을 전수해 주는 일이리라. 언제부터 한국에서 일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최소한 9월부터는 완주에서 연구 업무를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KIST가 원하는 적절한 시점에 무리 없이 부드럽게 삶의 전이가 이뤄지길 희망하고 있다.


2달 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던 이런 희망 ㅡ 미니애폴리스에서의 생활이 다소 급작스럽긴 하지만 이렇게 정리될 기미가 보인다. 역시 사람 일은 내가 계획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들은 다 정해진 때가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과의 상호 작용과 관계 속에서 불쑥불쑥 만들어졌다가도 해소되는 것이리라. 이것이야말로 신앙에 기반한 삶의 간증 아닌가,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