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동안 시흥 부모님 댁에 있었는데, 오랜만에 안양교회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린 뒤 돌아오는 길에 안양일번가 근처 舊 CGV 건물 5층에 있는 헬스장에 들러 일일권을 끊고 운동을 했다 ㅡ 뜬금없이 웬 헬스장인가 싶겠지만, 요사이 1년 새 연구원의 짐랫 박사 덕분에 아주 웨이트 트레이닝에 바짝 물이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운동이 끝나갈 무렵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내 3시 반 이후에는 시흥 집에 도착할 것 같으니 준비해서 함께 스크린 골프장에 가자고 제안했다. 비록 익산에서 주중에 가끔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연습을 하곤 했지만, 18홀 스트로크 게임을 하러 스크린 골프장에 간 것은 오랜만이었다. 게임 시작 전 약간의 시간 동안 골프장 내에 준비되어 있던 골프채 가방에서 꺼낸 드라이버(driver)와 아이언(iron)을 휘둘러보며 연습을 진행했는데, 영 맥을 못 추는 아버지와는 달리 나는 '오호, 이 정도면 비벼볼 만 하겠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매우 성공적이었다. 일단 드라이버샷이 많은 경우 200 m 이상을 날아갔고, OB로 빠지는 경우가 지난 번에 비해 극히 적은 수로 줄었다. 아이언 샷은 생각보다 멀리 나가지 않아 다소 안타까웠지만, 그에 비해 우드(wood)가 너무 잘 맞아 160, 170 m 는 그냥 날아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달라졌는지 아버지께서 오히려 더 의아해 하셨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내가 꽤 몸통 회전을 잘 하면서 꼬임을 잘 유도하고 그렇기 때문에 파워풀하게 치는 것 같다는데, 최근에 운동 좀 하더니 힘이 붙은 거 아니냐는 말도 덧붙이셨다. 정말 아닌게 아니라 지난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어쩐지, 요즘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어라? 좀 맞네?' 싶은 게 헛된 느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프로치(approach)와 퍼팅(putting)은 매우 큰 문제였다. 아무리 두 세 타 만에 그린(green) 혹은 그 근처에 공을 올려놓아봐야 무슨 소용인가. 어프로치와 퍼팅에서 너무 많은 타를 잃었다. 전체 18홀 중 두 번째 홀이 유일한 양 파(double par)였는데 ㅡ 고백하건대 실로 이것도 경이적인 진보였다 ㅡ, 이 때 황당한 어프로치 실수와 퍼팅으로 잃은 타가 너댓 타는 되었을 성 싶었다. 이후에도 꼭 버디(birdie)나 파(par)를 노릴 수 있었음에도 공이 이쪽 저쪽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타를 잃는 바람에 더블 보기(double bogey)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18홀을 100 타 이내로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드라이버 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신 아버지를 아주 손쉽게 누르고 오늘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생후 37년 반 만에 아버지를 골프로 꺾었다!


내가 골프에 관한 여러가지 짜증 섞인 호소를 이 홈페이지에 남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일취월장(日就月將)한 것은 맞는데... 왜 그땐 아무리 쳐도 손만 아프고 제대로 공이 채에 맞아 날아가지 못했던 것인지, 그런데 지금은 왜 곧잘 맞는 것인지, 사실 모른다. 4년 전에 본 골프 관련 웹페이지의 설명이나, 재작년에 본 골프 프로의 유튜브 동영상 강의나, 최근에 골프 채널에서 본 골프 클리닉 강의나 사실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더구나 그걸 본다고 해서 내가 이해하는 폭이 요즘 들어 유별나게 늘어난 것도 아닌 것이다. 도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기에 이전에는 안 맞던 것이 지금은 맞는 것인가? 모른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 있었다. 그냥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못 하는 것인지, 다 모른다. 보통 이도 저도 모르면 내팽개치고 포기하기 마련이지만, 기묘하게 나는 끝까지 골프채를 잡고 어제 그렇게 성을 내며 '다시는 골프 하지 말아야지' 이를 갈다가도 오늘 이렇게 골프연습장에 나오곤 했다. 뭐가 나아진 건지, 혹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정석 풀이법이 있는 수학과는 달리, 스포츠는 체격과 신체 움직임이 사람마다 다르다보니 대략적인 원칙은 있되 적용에는 정해진 방법이 없다. 그러니 티칭 프로가 아무리 온갖 말로 설명을 한다 해도 그 사람이 내 몸이 아닌 이상 받아들이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텍스트와 수식으로 골프를 설명해주는 프로가 있었다면 이해가 더 빨랐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프로는 내 주변에 없었다 ㅡ 물론 처음에 만났던 그 할아버지 운영자는 그런 얘길 했었지, 거리(d)는 힘(F) 곱하기 속도(v)라는 유사물리학(?)적 소견을...


그러니 어떻게 해야 했는가? 그냥 해야 했다. 무한히 반복하고 경험해야 했다. 때론 잠시 거리도 두었다가 오랜만에 복귀하기도 하고. 그게 효과적인 방법인지 알 리는 없었지만, 딱히 좋은 다른 방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돈을 그냥 쏟아붓는 느낌이 들더라도 나는 가방을 챙겨 들고 연습장으로 가야했다. 정말 그랬다. 그냥 했다.


그랬더니 된다. 어느새 부턴가 오버래핑(overwrapping) 그립을 쓰지 않고 인터로킹(interlocking) 그립을 쓰는 나를 발견했고, 채를 쥔 양손을 내 신체 어느 부분에 위치하는 지를 일정하게 두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뭔가 이렇게 치면 드라이버와 우드가 딱 잘 맞아 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채가 잘 맞을 때에는 마치 채찍으로 후려치듯이 잠시 붕 뜨듯 채를 놓는 기분이 들었다가 공을 맞힐 때에는 와락 잡게 되더라는 그 ㅡ 지금 쓰면서도 이게 과연 독자들에게 전달될 만한 표현일까싶을 정도로 ㅡ 기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게 누가 가르친 덕인가? 그것은 맞다. 수많은 영상과 웹페이지 문자 자료가 내게 정말 많은 가르침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어떻게 전달되어 습득된 것인가? 그것은 모른다. 정말 알 수 없는 기묘한 그 반복의 수행이 오묘한 마법을 부려 사람을 갑자기 바꿔놓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니 이런 일들을 공부할 때 몇 번 겪었다. 영어가 그랬고, 물리학이 그랬다. 정말 어려워서 너무 하기 싫었던 영어와 물리학은 중고등학생 때 나를 가장 많이 스트레스 받게 한 과목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ㅡ 그게 참 기특하다 ㅡ 문제집의 문제를 다 틀리고, 해설을 봐도 '이런 문제가 또 나오거든 잘 풀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만 했음에도 기어코 책상에 다시 앉아 공부했다. 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냥 했다. 그냥 1장의 내용을 보고, 이해를 못하고, 그래도 2장, 3장... 그렇게 마지막까지 그냥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나아갔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뭔가를 깨우치더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게 어떤 사고와 연산 결과 도출되는 득도(得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전에는 몰랐던 게 지금은 밝히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그래, 이건 득도가 맞으며, 개안(開眼)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모든 개벽(開闢)을 이끈 원동력이 무엇이었나? 그냥 하는 것이었다. 그냥 우직하게 하면 뭔가 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날 골프에서도 이 명제가 성립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주말 중 차를 같이 타고 있던 초등학교 1학년 조카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희준아, 뭘 배우다 보면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가 가끔 있거든? 그런데, 삼촌이 해 보니까, 그냥 하면 되더라고. 힘들어도 그냥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다보면, 그게 된다? 이게 희준이보다 30년 더 살아 본 삼촌이 해 줄 수 있는 얘기야."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