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특별한 특수 상대성 이론 강의]
Date 2008.11.27
아, 오늘 수업만큼 힘든 수업이 없었다. 오늘은 애들한테 '특수 상대성 이론'을 가르쳐줘야 했는데 이거 정말 내 전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양자역학처럼 친숙한 것도 아니고, 오늘 수업 시간을 무려 20분 초과했다. 단지 이 단원 하나만을 하는데.
요즘같이 기초 물리학 수업이 버거운 적이 없었다. 이전의 전자기학 부분도 물론 무시하지 못할 난이도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사실 그건 미적분 실력의 문제였다. 이론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는 이럴 때 그 현상의 '피직스(physics)'는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최근 가르치는 내용은 죄다 현대 물리학 내용이다. 어제는 양자 역학의 '맛'을 약간 보여줬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슈뢰딩거 방정식 (Schrödinger's equation)을 이야기하니 다들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더 해괴망측한 것이었으니 뭐 더 할 말도 없다. 아, 사실 나도 그렇게 익숙한 것은 아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을 내가 써먹은 적이 별로 없다. 그래봐야 그것을 다루는 수업에서만 몇 번 접해봤을 뿐이지 이 이론이 심도있게 다른 현상을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4차원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동시성의 상대성, 로렌츠 변환, 쌍둥이 역설 뭐 이런 것들을 논하는데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정말 교수님들은 수 년간 가르쳐 온 경험이 있으셔서 설명이 수월하시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 정말 절실하게 느낀 것이 일종의 '갭(gap)'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나도 1학년 때는 저랬던 게 분명하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고 와닿지도 않으며 머리 속에서 좀체 정리되지 않아 모르는 것만 못한 그런 상태! 쉽사리 수긍이 가지는 않지만 익히긴 해야 겠고, 그래서 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얹혀진 상태. 사실 내 앞에 있던 애들이 다들 그런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신입생 때로부터 3년이 지나 벌써 졸업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내가 '기억'하는 범위의 수준이 매우 커졌고, '이해'하는 내용의 깊이가 매우 깊어졌으며,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수년간 고생스럽게 배우면서 양자 역학의 터널링 효과는 wave function을 구하면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것이고, 전기(electricity)와 자기(magnetism)는 근본적으로 하나인 것이며, 가속되는 전자는 전자기파를 방출하기 때문에 Rutherford의 원자 모델은 성립할 수 없다 (써놓고 보니 어째 다 물리학 이야기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 애들은 이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까? 당연히 '그 당시의 나'처럼 듣기만 들어 봤되 이해하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이 학생들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니까 '내가 현재 아는 수준'으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을 언제부턴가 느끼게 되었다. 당시의 나에게 요구하더라도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그런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그 수준은 4년간의 다양한 공부와 오랜 시간의 사색 끝에 얻어낸 것인데 '그러니까 너희는 지금 공부할 때 그걸 빨리 얻어라'하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 정도 배우면 이 정도의 약간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어야지.'라면서 고학번 전공 서적을 뒤적거린다던가 '애들한테 이걸 가르쳐주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을 거야'하면서 높은 수준의 이론을 들먹거린다던지. 내가 지금 이해하는 수준과 당시의 수준은 정말 큰 차이가 있는데 어느새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기억 못한다'는 말처럼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망각하고 애들한테 이상적인 모델을 주입시키려고 야단법석인 셈이다.
왠지 효과가 더 떨어지는 것 같다. 어렵게 가르치는 것이 곧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든다. 물론 어렵게 가르치면 거기서 살아남는 사람은 정말 찬란한 빛을 내게 된다.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빛을 잃고 만다. 사실 시간만 지나면 모두가 어느 정도 밝은 빛을 내는 것인데, 이렇게 처음부터 맥을 잃은 보석들은 계속 이 일에 정진해서 빛을 내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찾아 훌쩍 떠나버리곤 한다. 그러나, 조금 더 학생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모두가 따라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면,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ㅡ 예를 들면 해법을 하나씩 차례대로 논리적으로 알 수 있도록 문제를 조직한다든지, 실험 메뉴얼을 더 친절히 작성한다든지 ㅡ 모두가 자기에게서 나온는 빛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주에는 좀 더 친절한 수업을 진행하야지. 그래도 다들 잘 따라와주니 고맙다. 오늘 2차 중간 고사 문제를 흘끗 봤는데 내가 다뤄 준 문제들이 적잖이 출제되어서 순간 기분이 좋았다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