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아이언 샷 굿 샷]
Date 2008.01.08


오늘도 아버지를 따라 골프 연습장에 나갔다. 골프 연습을 명목으로 골프채를 들고 잔디밭으로 나간 게 벌써 대여섯 번째 되는 것 같다. 출국 전에 서점에서 산 '논어(論語)'를 보며 '자왈(子曰)~'하고 구절을 읊조리고 있는데, 당장 옷 갈아입고 나올 준비를 하라시는 것이었다.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골프 연습장으로 나갔다. 오늘은 실버 레이크(Silver Lakes) 골프장이 연중 휴무인 '드문' 날이라서 아버지 말씀을 빌리자면 '좀 귀찮게' 밖으로 나왔다.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 먼저 이야기하지만, 남아공에서의 골프는 매우 '대중적인 스포츠'로 취급받는다. 10대 애들도 골프를 친다. 아주머니들도 골프를 친다. 최근에는 캐디 역할만 주로 맡는다고 여겨왔던 흑인들도 부유층의 경우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남아공은 골프하기에 적절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어딜가나 골프장이 '만연'해 있다. 남아공 정도의 기후면 잔디가 다 타 죽지도 않고 강한 태양아래 잔디가 잘 자라 가꾸기만 잘 가꾸면 훌륭한 골프장을 조성할 수 있다. 이미 남아공은 어니 엘스 등 걸출한 골프 선수들을 낳았고, 세계적 휴양 도시 선 시티(Sun city)에 가면 세계적인 대회를 치르는 유명한 골프장이 두 개나 있다. 때문에 골프가 귀족 스포츠, 부유층만의 스포츠로 취급되는 한국과는 달리 남아공은 그렇지 않다. 골프장 이용료만 해도 한국의 1/5 이하이니 이미지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모로코 공주님과 직접 골프를 친 아영이 누나도 한국에서만 골프가 희한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다른 나라 어딜 돌아다녀봐도 골프는 비교적 저렴하고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대중적일 수 없는 그런 스포츠라고 했다. 그건 사실인 것 같다.

1시간여 동안 허탕만 쳤다. 급기야 그립(grip)에 문제가 있어 전혀 상관이 없어야 할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는 듯 악재가 겹치기 시작했다. 힘은 점점 빠지고, 공은 안 날아가고 영 신이 나지가 않았다. 완벽한 코치임을 자부하시는 우리 아버지, 이제나 저제나 이런 소리 저런 소리로 훈계하고자 야단이시다.

잠깐 쉰 뒤에 다시 자세를 잡고 골프채를 휘둘렀다. 잡고 있던 채는 아이언 9번. 어라?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잘 쳤다. 왜지? 아,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대로 공의 밑부분을 찍어치는 기분으로...? 오, 또 하나 제대로 날아갔다. 그래, 공을 끝까지 지켜보자. 이럴수가! 또 제대로 잘 맞았네!! 이렇게 세 번 연달아 샷이 성공하자 아버지께서 그제서야 유심히 보시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다가 또 엉망진창 샷으로 다시 돌아가겠지'하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중간의 2번 정도 실수를 제외하면 약 여남은 번 정도 연속으로 제대로 아이언 샷을 날렸다.

아버지께서는 신이 나셨는지 박수를 치면서 주변에 떨어진 골프공을 다시 주어와 내 앞에 놓아주셨다. 이상하게 마지막 10분동안 신들린 듯한...은 아니고, 아무튼 당시로서는 믿기 힘든 감각이 날 지배했다. 분명 완벽한 샷은 아니지만 힘들이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공이 붕 떠서 날아간다는 게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골프에 빠지는구나. 만약에 '홀(hole)'이라는 목표지점이 생긴다면 정말 재미있겠다. 골프를 친다는 게 정말 이런 재미가 있구나. 아버지께서는 오늘 정말 잘 했지만 당장 다음에 또 해보면 잘 안 될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건 실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원래 그런 거란다. 매일매일 연습하고 샷 감각을 제대로 들여놓더라도 언제나 항상 '굿 샷'을 날리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서 아마추어 골퍼들은 매일같이 그 '모기장'에서 연신 골프채를 휘두르며 연습을 하는 거고, 프로 골퍼들도 예외는 아니란다.

사실 내가 골프를 쳐 볼 기회가 한국에서 어디 있었겠나. 남아공 이 땅에 와서 재미있는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래, 아버지도 이렇게 골프를 치게 되었는데, 나라고 아니겠나. 나도 커서 멋지게 골프채를 휘두르며 '굿 샷~' 이런 소리 좀 들어야지 뭐 :) 그런데 오면서 그런 생각이 문득 났다. 한국은 골프연습장비만 해도 꽤나 비싼데. 그러면 이제 학교에서 1,700원짜리 학관 B만 먹으며 돈을 아껴야 하나. 어라, 그러면 이거 순전히 '된장남'이잖아? 흠... 역시 한국에서 골프를 하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인가. 에휴~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