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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공고안이 나오고 나서야 1,2급을 칠 필요가 없이 3급 (중급 시험에서 70점 이상) 만 합격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제서야 3급 관련된 책 한 권을 샀으며 4월 초에는 시험을 일찌감치 등록했다. 그런데 등록해 놓고 다른 일로 한창 바쁘다가 시험일자가 5월 14일이라는 사실을 그 전주는 5월 8일에야 알았다. 오 이런. 물론 3급 참고서를 학교 오가는 버스 안에서 보긴 했지만 그냥 정말 그 뿐 이었다. 책 한 권을 봤다.
사실 그렇게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이것도 시험이고 어쩌면 이번밖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랴부랴 준비를 하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도 토요일 리뷰 논문 발표를 면제해 주실 정도로 격려해 주셨다. 3급 내용은 고등학교 국사 및 근,현대사 내용 전부이며 일부 대학교 교양 수준의 내용도 출제되는 정도이다. 처음에 3급 책을 샀을 때 '지금까지 배웠던 것 다 잊었으면 어쩌지?'하고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기억이 많이 되살아났고, 지금 다시 고등학교 시험을 보라고 하면 잘 볼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어쩌랴. 이것은 기회가 몇 번 없는 시험이고 무조건 70점을 넘어야만 하는 시험이다.
지난 주 월요일부터는 기출문제도 한 회씩 매일 풀어가면서 답을 정리하고 책도 다시 한 번 죽 보면서 주요한 것들을 외웠다. 특히 건축물이나 책, 학자들의 주장과 불교 발전에 공헌한 승려들의 이름과 업적을 특별히 외웠다. 왜냐하면 큰 흐름, 특히 왕들의 업적은 정확히 기억할 수 있지만 국사책에서 부속 내용처럼 다루는 것들은 확실하게 외워두지 않으면 언제나 헛갈렸기 때문이다.
시험 장소는 안양공업고등학교로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안양, 과천, 군포, 의왕 지역의 응시자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 ㅡ 그것을 봐서도 안양은 정말 수도권의 교육 중심지이다. 나는 안양공고 운동장과 체육관은 와 봤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항상 어렸을 때부터 대농단지의 공고 뒷길을 걷다보면 '안양공고는 정말 커!' 이렇게 생각해왔는데 정말 큰 학교다. 안양 최고의 전문계 고등학교가 아닐까 싶얼 정도로.
아무튼 시험은 아침 10시 20분에 시작되었고 응시자는 나 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도 있었다. 학부 후배인 호윤이도 다른 줄에서 시험을 치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이 드셔서 두꺼운 안경을 쓰신 어르신도 계셨고 주부 아주머니들도 계셨다. 시험 시간은 총 80분인데 65분부터는 OMR 카드에 마킹을 모두 다 한 응시자들에게 퇴실이 허락되었다. 아이들은 긴 시간동안 시험문제를 푸느라 곤했는지 옆에서 덜그럭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며 아주 못 견디겠다는 티를 풀풀 냈다. 하긴 애들의 집중 시간이 80분을 채우겠는가. 온몸이 간지러워질 것 같은 그 답답함을 나도 이해한다. 80분이 후딱 지나갔고 나는 마킹에 틀림이 없는지 두어번 확인한 뒤 제출했다. 뭔가 어렵지 않았다. 그간 내공이 많이 쌓여서 그런가? 전혀 걱정되거나 긴장되지 않았다. 호윤이도 '형 표정을 보니 전혀 어렵지 않았나 보네요'라고 했다.
시험이 끝나고 학교에 와서 그룹 미팅을 마치고 가채점을 해 보았다. 나는 가채점을 위해 종이에 따로 답안을 적어가야 했는데 놀랍게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국가에서 주관하는 시험임에도 문제지를 회수하지 않았다. 답은 정확히 오후 2시에 공개되었고 나는 약간은 상기된 모습으로 가채점을 했다.
오, 그런데 점수가 너무 잘 나왔다. 무려 93점이다 93점. 단 세 문제를 틀렸다. 총 50개의 문제 중에서. 내가 너무 열심을 내서 문제를 풀었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거 73점만 맞아도 되는 걸 너무 열심히 했다며 기분 좋은 나무람을 하셨다. 나는 혹시 OMR 카드 문제 때문에 성적 처리가 제대로 안 되었을 수도 있다며 엄살을 피웠다.
결과가 좋게 나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국사 공부를 오랜만에 다시 하면서 여러 가지를 많이 느꼈다. 특히 현대사 부분은 고등학생 때에도 세밀히 다루지 못했던 부분인데 위키백과와 다른 인터넷 자료를 뒤져가면서 느낀 것이지만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환희를 다 담고 있는 드라마였다. 나는 그 과정에서 등장한 애국자와 매국자, 긍정적이 평가와 부정적인 비난을 모두 다 이해할 수 있었고 직시(直視)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 3급을 딴 것은 기정사실이니 다음에는 고급 시험에 응시해서 1급을 따야 겠다. 사실 1급이나 3급이나 전문연구요원 시험에는 크게 의미가 없다. 하지만 뭔가 이대로 마치기에는 아쉽다. 게다가 휘상이도 1급을 가지고 있는데 나라고 3급에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고급 시험은 좀 더 난해하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동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처럼만 해서 한 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다른 여러 시험에도 이와 같이 준비해서 응시해 보고 싶다. 이번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응시는 단순히 3급으로 자격을 갖추었다는 의미에서 뿐 아니라 이렇게 짬을 내어서도 (기본 밑바탕이 있다면) 다른 분야 공부도 충분히 해 볼 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