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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유난히 재미있게 봤던 것은 바로 BSW라는 약자로 불리는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ündnis Sahra Wagenknecht)'이었다.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독일 여성 정치인 이름인데, 좌파당(Die Linke)에서 탈당하여 만들어진 당의 대표 이름이기도 하다. 이 당은 올해 처음 만들어졌는데, 오늘 선거에서 작센에서는 12%, 튀링겐에서는 무려 15%를 획득했다. 아니, 극우가 판을 치는 독일 정치판에서 어찌 좌파당 탈당파가 이렇게 많은 표를 받았나 해서 알아봤더니, 이 자라 바겐크네히트라는 사람은 극좌, 심하게 말하자면 옛 동독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인데 희한하게도 이민 정책과 러시아 관련 정책에서는 극우인 AfD와 기묘하게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지. 우리로 치면 '친박연대'같은 이런 이름의 신생 정당에 표가 엄청나게 몰렸다. 다시 말하자면, 작센이나 튀링겐이나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현재 독일의 포용적인 이민 정책과 우크라이나 지원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실로 유감스럽지만, 어떻게 보면 이게 요즘 대세가 아닐까 싶다.
사실 유럽의 정치 지형 변화는 우리나라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11월에 있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비하면 그 영향력이 조금 낮게 보이기도 하지만, 간신히 승리를 거머쥔 영국과 프랑스의 좌파 계열에도 위태로움이 조금씩 보이는 것을 보면 이미 유럽은 오랜 기간 인기를 구가한 진보정치의 색채는 다 닳아버렸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국 중심주의가 힘을 얻는 와중에 전 지구적인 문제에 대해 올바른, 아니 '정치적으로라도' 올바른 소리를 내놓는 정당이 힘을 잃는다면 이건 완전 각자도생이 된다는 뜻이고, 도저히 믿고 잘 지내기 힘든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안 그래도 전쟁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이 마당에 부디 극단적인 상황들이 연이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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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별개로, 이번 주말동안 비텐베르크(Wittenberg)와 포츠담(Potsdam) 구경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우선 교회와 예배 얘기부터 하자면, 비텐베르크에서는 토요일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실제로 세례를 베풀고 성만찬을 자주 집전한 곳으로 유명한 시립교회(Stadtkirche)에서 영어 예배를 드렸다. 무려 미네소타의 세인트폴(St. Paul)에서 활동하는 루터교 목사의 집전 하에 예배를 드렸는데, 사회를 보는 분이 예배 시작 전에 내게 덥썩 독서(讀書)를 제안한 덕에 엉겁결에 앞으로 나가 제단 앞에서 신명기의 구절을 영어로 읽었다. 다행히 NIV 버전의 영어 성경을 사용하고 있었고, 발음 상에 큰 문제가 될만한 어휘는 없어서 긴장을 좀 풀 수 있었다. 나중에 사회자 분이 내게 묻길,
"아니 웬만한 미국인들보다 독서를 잘 하시더군요. 속도도 천천히 읽고... 혹시 한국에서 오신 루터교 목사님인가요?"
예배가 끝나자마자 같은 장의자(pew) 끝에 앉아계시던 신도 분이 내게 손짓하며 부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껏 여기 이십 몇년간을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는데, 젊은이같이 노래 잘하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봤다우. 아마 세 번째 정도되겠네,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옆에 앉길 잘했다우. 고마우이."
다음날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어제 예배를 집전한 미네소타 루터교 목사 내외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부는 반갑게 나와 인사했고, 같은 자리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것저것 얘기하는데, 한국에 오신 적도 있고 자기는 '김을 밥 위에 얹어 젓가락으로 말아붙여 먹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며 한국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목사님은 이런 얘길 하시며 내게 명함을 건네 주시고 미네소타에 올 일이 있으면 꼭 보자고 하셨다:
"예배 전에 보니 한국인이 있는 거에요. 예스! 독서를 하는데 잘 하네? 예스! 오, 그런데 노래도 완벽하게 잘해. 예스!"
포츠담에 가기 전에 거쳐야 했던 베를린(Berlin)에서 성 조지 성공회 교회(St. George's Anglican Church)에서 일요일 감사성찬례를 드렸다. 이곳은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에서 파송된 사제가 관할하는 곳으로 영국교회의 치리를 받는 곳이었다. 인구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베를린이라는 게 확 드러났던 것이, 전 교인의 절반 정도가 흑인이었는데, 아마 성공회 교세가 강한 나이지리아 출신의 베를린 거주 가족들이 아닐까 싶었다. 지난주 성찬례에 참석했던 뮌헨(München)의 성공회 교회는 미국 성공회에서 파송된 사제가 목회를 하고 있었고,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이곳 베를린의 교회는 약간 더 전례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앞앞 자리에서 예배를 드렸던 분이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 그거 아세요? 당신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셨어요. 저는 무슨 뒤에서 천사가 노래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느님의 말씀으로 언제나 감응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목소리로 봉사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기독교인이 가진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다. 모든 영광은 주님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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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텐베르크에서는 루터의 생가이기도 했던 루터의 집(Lutherhaus), 그리고 루터가 작사 작곡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Ein feste Burg ist Unser Gott)'이 둘러 그려져 있는 첨탑을 가진 성(城) 교회(Schlosskirche)를 방문했다. 성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루터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대사(全大赦)를 비판한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고 알려진 문으로, 독일어로는 Thesentür라고 한다. 전쟁 중 불이 났을 때 이 문은 전소되었으나 후에 95개조가 새겨진 청동문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문 상단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 양 옆으로 마르틴 루터와 필리프 멜란히톤(Philip Melanchton)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멜란히톤의 손에는 유명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펼쳐져 있었다.
포츠담에서는 늘 가보고 싶었던 상수시 궁전(Schloss Sanssouci)과, 걸어서 20분 정도 가면 나오는 신(新) 궁전(Neues Palais)에 들어가 보고 주변을 거닐어 보았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도착하자마자 선크림을 발라야 했는데, 맑은 날씨에 푸르른 나무와 궁전의 벽돌이 대비되어 무척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독일 건물이나 유적들은 하나같이 섬세하지 못하고 투박하며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포츠담의 궁전들은 그 선입견을 처참하게 부숴뜨리기 충분하다고 믿는다. 프리드리히 2세 대왕이 선호해 마지 않았던 섬세하고도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궁전 내부 장식은 이따금씩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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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쁜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 정말 독일 생활 아무 문제 없이 즐겁게 일하면서 잘 즐기고 있는 것같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
정치 얘기를 잘 알아두는 것은 꽤 유용했다. 작센 주의 독일 연구자들이 만날 때마다 지난 선거 얘기로 꽃을 피우는데, 정말 만나서 정치 얘기하는 건 한국이나 독일이느 피차 일반이구나 싶었다. 덕분에 나도 좀 아는 체를 할 수 있었는데 역시나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극우 정당의 약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파 정당을 선호하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작센 주도 이번 정부 하에서 배터리 관련 예산이 모두 감축되는 불행을 겪었는데, R&D 예산 삭감 폭풍이 휘몰아쳤던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닥 특수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