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성공에 이르는 '어떠한' 길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나마 과거에는 그 성공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지만, 요즘은 다른 게 없다 ㅡ 오직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다. 이들의 말을 어느 정도 종합하여 요약하자면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큰 과제 둘을 성취해야 한다는데, 하나는 대입이요, 다른 하나는 부동산이다. 수많은 팁과 전략들은 모두 이 둘을 이루기 위한 소주제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사람마다 성공의 양태는 다르고, 그렇기에 접근 방법도 다르며, 무엇보다도 돈을 많이 버는 게 성공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이쪽 방면에서 충돌을 경험한다. 과거만 해도 돈을 뛰어넘는 이상과 가치에 대해 논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세상물정 모르는 패배자의 구시대적 넋두리 정도로 취급되곤 한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내가 잘못된 게 맞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바뀐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극소수만이 대물림해서 쥘 수 있는 수준 따위의 '성공'을 위해 아둥바둥한다는 게 나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덧붙여, 그런 분위기에 휘말린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그게 어느새 표준이 되어버린 이 사회가 무척 개탄스러울 뿐이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이런 '정해진 길'에 대한 사람들의 입방아가 늘 있어왔다. 너는 왜 과학고나 특목고, 외고를 안 가고 일반고를 가니? 너는 왜 의대를 안 가고 화학과를 가니? 너는 왜 박사학위 유학을 안 하니? 너는 왜 교수 안 하니? 너는 왜 서울로 안 오고 익산에서 살고 있니? 너는 왜 결혼 안 하니? 너는 왜 비트코인 투자를 안 하니? 너는 왜 서울에 집 살 생각은 안하고 무슨 한옥 타령이니? 등등등. 이런 질문에 반문하면 대답은 늘 뻔하다. 그게 다수가 공유하는 '성공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정욕(正欲)』을 읽으면서 ㅡ 비록 이 감상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약간 결이 다르지만 ㅡ 이러한 '정해진 길'에 대한 다수의 집착이 기실 집단적인 공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 길대로 걸어가 완벽하게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이므로 절대 다수는 '정해진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한 이탈자들이다. 나침반이나 지도 없이 완벽한 길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갈피를 못 잡고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혹여라도 완전히 길을 잃을까 무서운 것이고, 그러다보니 훤하게 닦여진 '정해진 길'에 그리도 집착하는 것이다. 비슷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끼리 그 공포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그 '정해진 길'에 대한 믿음은 교조적인 무언가가 된 것이고, 그것이 일종의 세상살이 교리가 되어 다수의 행동양식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길은 다양하고 그 길의 끝 역시 다양하다. 내가 잘 갈 수 있는 길, 내가 더 즐겁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그 '정해진 길'이 아닐 가능성이 확실히 더 높은데, 왜 내가 그 길을 걸어야만 한단 말인가? 나는 나만의 나침반과 지도가 있으니, 꼭 '정해진 길'로 걷지 않더라도 코끝을 스치는 바람의 숨결을 즐기며 유쾌하게 걸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게 꼭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성공'과 다르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ㅡ 왜냐하면 그 절대 다수조차 자기가 생각하는 '성공'을 이루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왜 자신의 성공을 이루지도 못한 패배자들에 의해 내 삶이 재단되어야 하는가? 그럴 바에야, 내 뜻대로 살아보고 눈을 감는 것이 더 맞지 않겠는가?


그러니 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이단아'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나답게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