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순부터 이상하게 심쿵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뭔가 가슴이 꺼지는 듯이 약간 가라앉는 듯하면서 울컥하는 그런 기분 말이다. 보통 많이 놀라거나 감동을 받을 때 이런 느낌이 생겨야 맞다고 생각했는데, 업무 중에 가끔씩 이런 기분이 들어서 뭔가 기묘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고, 지난 주 나고야(名古屋)에 갔을 때에도 간혹 이런 느낌이 들어서 뭔가 꺼림칙했다. 그래서 귀국한 뒤 오전 일찍 연구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순환기내과 진료를 해 주는 의원에 찾아갔다.


먼저 혈압부터 쟀는데, 요즘은 최고 혈압은 110대에서, 최저 혈압은 70대에서 나온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유산소를 한 덕분인지 과거보다는 조금 낮아지긴 했다. 이윽고 의사 선생님은 내가 커피와 술은 얼마나 마시는지, 흡연은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물어보신 뒤 간단한 심진도 검사와 심장 초음파 검사를 진행해 주셨고, 나는 거기서 활발하게 펌프질을 하는 심장의 모습을 난생 처음 보았다. 심방과 심실이 연결된 부분에 있는 삼첨판(三尖瓣)과 판막의 모습들도 처음 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전체적인 심장의 형태나 뛰는 모습에는 문제가 없고, 약간 삼첨판 근처에서 피가 역류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내가 느낀 증상은 분명 심실조기수축, 쉽게 말해 부정맥(不整脈)에 해당하는 것으로 24시간 증상을 추적해볼 가치는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홀터(Holter)검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간단하게 생긴 심전도기록계를 24시간 부착하고, 심장 박동을 검사함으로써 이상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라 하셨다. 만일 울컥하는 느낌, 즉 심실조기수축이 느껴진다면 바로 기록계에 있는 버튼을 누르라고 하셨다. 하지만 검사를 진행한다고 해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게 한답시고 아무것도 안 하면 검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니, 평소처럼 생활할 것을 주문하셨다. 그리고 여름이니 어쩔 수 없이 목욕을 해야겠지만, 기록계가 물에 젖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날 평소대로 생활하고자 했다. 늘 그래왔듯이 출근 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샷 하나를 뽑아 뜨거운 물에 탄 커피 한 잔을 했고, 점심 이후 다른 박사님이 잠시 이야기할 것이 있다 하시기에 구내 카페에 가서 아메니카노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런데 그 두 번째 커피를 마신 뒤인 오후 2-3시쯤부터 그 심쿵하는 느낌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아, 이게 정말 카페인이랑 관련이 있는 것인가? 나는 심실조기수축이 의심되는 느낌이 들 때마다 (거의 반사적으로) 버튼을 눌렀다. 마침 그날 저녁 회식 자리가 있을 뻔했지만 굳이 술까지 마셔가면서 (스스로 증상에 나를 몰아넣을 행동을 하면서까지) 체크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저녁 자리는 사양했고, 대신 골프연습장에서 간단하게 연습을 했다. 샤워를 할 때에는 기록계를 잠시 벗어두었지만 아무튼 잠자리에 들기 전 기록계를 다시 부착하고 혹여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할 때나 누워 있을 때 심실조기수축이 일어나는 지 지켜보았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다음날 24시간이 지나 부착된 기록계를 떼어 내고 의원에 다시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기록을 확인한 뒤 내가 정말 '심실조기수축을 정확하게 잘 짚어내었다'고 칭찬해 주셨다. 버튼을 누른 시기 직전에는 어김없이 심실조기수축의 파형이 등장했다. 정말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형 중간에 두터운 피크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고, 그 때가 바로 내가 가슴이 꺼지는 느낌을 받았던 그 때였던 것이다. (그리고 몇 초 뒤 내가 버튼을 눌렀음을 지시하는 빨간색 점선으로 된 원이 그려져 있었다.) 사람의 느낌이 어떤 생물학적인 운동과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의사 선생님은 비록 24시간 중 노이즈가 심했던 12% 정도는 판독이 불가능하지만 ㅡ 어쩌면 골프연습을 하던 시간 + 샤워를 위해 벗어두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ㅡ 하루에 느낀 심실조기수축이 이삼십회 정도인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기에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하셨다. 아마도 최근에 전달받은 건강검진 결과 '비특이적 ST-T 변화가 관찰됨'이라는 문구에 너무 관심을 기울인 결과 심장 박동에 너무 예민해져 이전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나갔던 심실조기수축을 느낀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과 더불어. (참고로 새로 심전도 검사를 했을 때에는 그 ST-T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하긴 6월이 좀 바쁘고 여러가지 일들이 많긴 했지만 이전보다 과도하게 특별히 바빴던 것은 아니고 술을 그렇다고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이 모든 증상이 갑자기 6월부터 진행되었다고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 왈, 심실조기수축은 감지한 이후부터 더 예민하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불편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데 어쩌면 나도 이런 현상을 자각한 이후부터 더 크게 느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하루 중에 심실조기수축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실제로 경험하는 일반인은 무척 많고, 특별히 심장 기능에 문제가 없는 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아직 약을 먹으면서 증상을 다스리기에는 그 증상이라는 것이 그리 심각하지는 않으니 일단은 생활 습관을 바꿔보면서 심실조기수축을 최대한 덜 느껴보겠다고 의사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렸고, 의사 선생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술을 줄여야 한다고 하셨다. 아니, 내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아닌데. 아, 그래도 확실히 KIST에 입사한 이후로 술자리가 많아지긴 했지. 그리고 나는 술자리에서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는 사람이었고.


하여튼 이 부정맥 파동(?)을 조기 진화하기 위해, 일단 앞으로는 매일같이 두세 잔 먹던 커피를 줄여보기로 했다. 혹여라도 커피를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는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함으로써 카페인 섭취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유산소 운동도 무리하지는 않는 선에서 꾸준하게 함으로써 심장과 관련된 근력과 근 지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고. 그리고 술자리야 내가 맘대로 빠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좀 더 유의하며 음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께 하자, 핸드폰 너머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성수야. 너도 이제 곧 마흔인데 옛날 같은 몸이 아니야."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