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일본 나고야(名古屋)를 여행 차 다녀왔다. 아래는 몇 가지 정리.


1. 정체 전선이 한반도에 엄습하던 시기인지라 여행 기간 내내 장맛비에 고생하리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그리 큰 고생을 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지막날 나고야성(城)에서 천수(天守) 주변을 돌 때 퍼붓던 때를 제외하고는 비 때문에 크게 고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둘째날이었던 토요일은 날씨가 무척 쾌청해서 다카야마(高山)와 시라카와고(白川鄕)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고, 덕분에 소매 없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던 내 양팔은 다음날 화상을 입은 듯 붉게 부어올랐다. 


2. 도착한 첫날에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시기에 함께 있었던 노무라 게이치로(野村圭一郎) 박사를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밤 시간을 보냈다. 원래 도레이(東レ)에서 일하던 그는 몇 년 전 다이킨(ダイキン)으로 이직했고, 그래서 가족은 계속 나고야 근처의 오부(大府)에서 살지만 자신은 오사카(大阪)에서 일한다고 했다. 나를 만나기 전, 역시 미네소타 대학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진카이룽(金凯龙)을 도쿄(東京)에서 만났다며 그에게서 받은 명함을 하나 내게도 건네 주었다. 내가 한국으로 건너온 지 몇 년 되지 않아 애리조나 주립 대학(Arizona State University)의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명함을 보니 부교수로 되어 있어 역시 열심히 연구하는구나 싶었다. 우리가 만난 장소는 가네야마(金山)역 근처에 있는 야키니쿠(焼肉) 음식점이었는데, 한국인을 데려다가 이런 곳에 와도 괜찮을까 하길래 아니 그래도 일본 야키니쿠는 한국 삼겹살집은 아니잖냐며 괜찮다고 했다. 모든 주문은 QR코드로 개별 진행할 수 있었고, 고기가 몇 접시에 나누어 여러 번 나왔는데, 생각보다 한국 음식의 영향을 받은 메뉴들이 굉장히 많아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식사 중에도 K-pop이 자주 흘러나왔는데 여기 한국 음식점이랑 크게 다를 것 없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심지어 고기를 먹으며 처음에는 맥주, 그 다음에는 하이볼, 그리고 그 다음에는 막걸리를 마실 정도였으니. 1차가 끝난 뒤에는 근처에 있는 츠케멘(つけ麵) 집에 가서 라면과 함께 맥주를 시켜 먹었는데, 면을 짭짤하고 진한 양념에 찍어 묻혀 먹는 방식이 마치 자루소바(ざるそば)를 먹는 느낌과 비슷해서 재미있었다. 노무라 박사의 아들과 딸은 미네소타에 있을 적에 나를 몇 번 본 적이 있었고 내가 무척 귀여워해 줬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꼭 커가는 아들 딸을 만나보러라겠다고 약속했다. 3. 엔저(円低)가 무엇인지 실감한 여행이었다. 3박4일의 일정으로 제법 방탕하게 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준수한 총비용이 나왔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ㅡ 바로 일본의 물가가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점이었다. 기다리느라 지친 나머지 폭식했던 스시 집을 빼고는 항상 결제할 때마다 '아니, 이게 진짠가?' 싶을 정도로 스스로 되물을 때가 많았다. 단, 나고야의 재즈 클럽인 'Jazz Inn Lovely'는 제외하고. 


3-1. 아, 재즈 클럽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방문했던 날 공연을 했던 분들은 굉장히 아방가르드(?)한 재즈 음악을 선보이는 분들이셨다. 베이스 주자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저런 주법을 통해 저런 기묘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깨달았을까 무척 흥미로웠다. 마지막 앵콜 느낌의 공연으로서 'Isn't she lovely?'를 연주한 것은 무척 재치있었다. 


3-2. 재즈 음악이 옛 사람들의 음악 장르로 점점 퇴색되어간다는 느낌을 여기서도 받을 수 있었다. 미국보다야 덜했지만, 그래도 공연을 감상하던 분들의 평균 나이는 다소 높은 편이었고, 그 음표를 마구 쏟아내고 발라대던 숨막히는 공연이 끝나고나니 마치 지역 어르신들 모임 술자리같은 분위기로 전환되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러한 전이(轉移)를 경험하지도 못한 채 잊히겠지만. 하긴 이런 생각을 옛날부터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대중가요 노래 한 곡의 길이가 3분도 채 안 되는 시대에, 전통적인 재즈 음악의 길이와 호흡은 너무 길다. 그리고 감상을 위해 생각해야 할 부분, 해석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과연 새 시대에 걸맞는 모습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면 재즈는 어떻게 변모해야 할까? 아니, 변모하지 말아야 하나? 재즈도 일종의 전통음악으로 치부되는 것일까? 공연 다음날 나고야의 '타워 레코드'에 올라가서 재즈 앨범 몇 개를 사다가 내가 집어든 앨범들이 대개 1960년대 발매된 것들이라는 것을 곱씹어보며 이것은 정말 과거의 음악으로 박제될 운명인 것일까, 깊이 생각해 보았다. 


4. '타워 레코드'에 가면 입구에서 멀지 않은 매장 정 중앙에 K-pop 몫의 매대 두 대가 떡하니 설치되어 있다. 최근 발매된 NewJeans의 앨범이 잔뜩 쌓여 홍보 중이었고, 워낙 유명한 NCT나 TWICE, 스트레이키즈, 그리고 최근에 또 새로운 보이그룹이 나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Treasure라는 그룹이 열심히 자기 앨범을 매대에서 홍보하고 있었다 ㅡ 이들의 얼굴은 사카에(栄) 지역 지하상가의 벽면 홍보물에서도 볼 수 있었다. 호텔 직원도 그렇고 식당 직원도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한국어로 바로 몇 마디 하는 것으로 보아, 정말 젊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 문화가 꽤나 히트치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아, 서점에 들렀을 때 중국어 교본보다 한국어 교본이 더 많은 것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5. 그런데 이번 여행 중에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장소는 사적지나 명승지가 아닌, 도요타(トヨタ)산업기술박물관이었다. 도요타가 전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만드는 회사라는 것을 모르는 이 없겠지만, 이 회사의 시작은 자동화된 방적기(紡積機) 사업이었다는 사실은 다들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도요타 박물관에는 자동차 얘기만 주구장창 있을 줄 알았건만, 정작 입구에 들어가보니 처음 만난 곳은 '섬유기계관'이었고, 그 장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방적기와 직조기(織組機)의 발전사를 수많은 실제 기계 전시를 통해 몸소 체험하게 해 주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달까. 사실 나도 탄소섬유 연구를 한답시고 방직과 관련된 온갖 얘기들을 알음알음 들어왔지만, 섬유공학과 출신은 아니다보니 이 분야 관련 지식 수준은 얕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이 기념관에서는 굉장히 많은 섬유 산업 관련 공정들을 실제 기계의 조작 방식을 직접 지켜보면서 눈에 익힐 수 있었다. 시간과 여력만 된다면 한두 시간 더 머물면서 직접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배우고 싶은 수준이었다. 


5-1. '섬유기계관'이 이런 인상을 줄 정도였으면 '자동차관'은 어땠을 지 따로 기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세계 1등이란 이런 것일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도 이와 같은 수준의 훌륭한 기술체험관을 만들어 대중에 공개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아무튼 산업화를 대표하는 섬유 산업과 자동차 산업을 20세기 초반부터 시작해낼 수 있었다는 것은 일본이 18-19세기 때부터 많은 정보와 과학기술을 습득함으로써 관련 산업을 발전시킬 기틀을 그 전에 이미 마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 모든 기술과 산업이 무(無)에서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는 법이니까. 도대체 그 동안 우리 민족은 무엇을 했던가 생각해보면 참 한심한 일이지만. 


5-2. 그런데 이런 열등감이 느껴질 만한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빠져 나와 일본의 거리를 걷다 보면 상당히 많은 측면에서 한국이 일본에 그리 뒤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앞서 열거했지만 대중 문화 측면에서는 이미 일본은 한국에 압도당한 듯 보인다. '우리나라는 절대로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60대 아버지에 비하자면 좀 더 유한 편이지만, 나 역시 '우리나라가 좀 잘 하는 면이 있더라도 근본과 기초가 탄탄한 일본을 앞서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도로 여기고 있는데 요즘 그 생각이 자꾸 흔들린다. 우리나라보다 10년은 앞서 있다는 일본의 수준은 이미 10년 앞서 흔들거리기 시작했고, 그 사이 일본인들에게는 없는 한국인들만의 특유의 기질이 일본을 닮이기단 한국 경제와 산업을 약간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키기게 하는 바람에 운 좋게도 우리나라는 어떤 면에서 일본을 압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어쩌면 지금의 10대들은 진짜 뉴스에서 말하는 대로 일본이 '맛있는 거 많고 볼거리 많은 주변 국가'로 인식될 뿐일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역사 수업을 통해 항상 반복적으로 각인해야 했던 열등감과 반일(反日) 의식이 유도하고자 했던 한-일 관계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모순적이고 알쏭달쏭하며 명쾌한 설명이 불가능한 양국의 관계이지만 분명한 것은, '기초가 튼튼한 일본과 조립을 잘하는 한국'이라든지 '선진국 일본과 중진국 한국', 혹은 '한국은 일본에 기술적으로 10년 뒤쳐져 있다'와 같은 과거의 도식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데 이제 전 세대가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일본 여행은 한국인으로서 전에 없던 그 모호해진 관계를 친히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