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연말연시를 기점으로 새해 인사를 나눈다고 카톡과 전화를 주고받다가 굉장히 서운함을 느낀 적이 한 번 있었다. 상대방에게 내색을 하지는 않고 머쓱하게 웃음을 내뱉는 'ㅋ'로 대충 얼버무렸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상처받으면서까지 연락을 주고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어제 어떤 글을 우연히 마주쳐 읽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의 말로 인해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이다.'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재작년 코로나19 양성 확진이 된 직후 오갔던 수많은 카톡과 전화를 떠올려본 뒤에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일찌기 경험해본 적 없는 일이었던지라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에 관한 일종의 '매뉴얼'이 없었던 탓이었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하지만 확진 당일과 다음날, 내 주변 사람들의 메시지는 실로 나를 굉장히 서운하게 만드는 실망스러운 것들이었다. 확진 판정으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나한테 왜 보건소 연락이 제때 되지 않냐고 성화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고,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감염된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객관적으로 들으면 '화가 날 법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서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ㅡ 일례로, 아버지는 확진 판정을 갓 전해 듣고 극도의 혼란에 빠진 아들에게 대수롭지 않다는양 '그 코로나라는 것, 별 거 아니다.'라는 말로 일갈했고, 내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하나는 '그날 같이 밥 먹으러 거기 같이 가지 않았던 나를 칭찬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두 사람은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이므로 그 말 저편에 있는 본심(本心)이 어떠한지 따로 저울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 말들을 그냥 스쳐 지나가듯 들을 수 있다. 만일 이들보다 신뢰감이 덜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발언의 저의(底意)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 보게 되었을 테고, 결국 굉장한 실망감 혹은 분노로 이어졌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을 먼저 쉽게 믿어 줌으로써 거기에서 기원한 서운함을 많이 감내하는 편이었다. 친구들은 그 무슨 호구같은 자세냐며 지적을 멈추지 않지만, 실험하는 사람의 특성상 먼저 '확인'해보고 결정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긴, 인간관계라는 것도 일종의 가설에 기반한 데이터 과학 아니겠는가. 신뢰감의 정도가 관계에서 파생되는 문제의 심각성을 결정짓는다 ㅡ 오늘도 이렇게 한 가지 결론을 터득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