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서 at이나 in을 쓰듯 러시아어에서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로는 в나 на를 쓴다. 뒤에 어떤 명사가 오느냐에 따라 в를 써야하는지 на를 써야하는지가 결정되는데, 대체로 в는 구체적인 어떤 장소의 내부에 있다는 느낌을 주고 на는 그보다는 열린 느낌을 준다. 물론 오랫동안 러시아어 구문을 보다보면 в를 써야할 지 на를 써야할 지 감이 잡히지만 초보라면 무조건 외워야 한다. 예를 들어,


  • - 학교에 있다는 표현은 в школе, 극장에 있다는 표현은 в театре 라고 하면 된다.
  • - 반면 경기장에 있다는 표현은 на стадионе, 거리에 있다는 표현은 на улице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장소에는 국가 혹은 도시같은 지명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한정적인 의미의 국가와 도시에는 전치사 в를 사용하고 넓은 지역명의 경우 전치사 на를 사용한다. 예를 들자면,


  • - 러시아에 있다는 표현은 в России, 익산에 있다는 표현은 в Иксане.
  • - 알래스카에 있다는 표현은 на Аляске, 우랄 산맥에 있다는 표현은 на Урале.


여기서 문제가 되는 명사가 바로 Украина, 즉 우크라이나이다. 이 단어는 파생어로서 전치사 у, 명사 край, 그리고 접미사 -ина가 합쳐진 것인데, край가 '경계'를 의미하고 전치사 у는 뒤에 나오는 명사의 소유 혹은 근처에 있음을 나타내며 접미사 -ина는 지명을 여성명사화해주는 것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Украина라는 러시아어 단어의 원래 의미를 '국경 근처의 땅' 정도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어로 우크라이나에 있다는 표현을 하려면 전치사 в와 на 중 어떤 것을 써야 할까?


  • - 우크라이나인들은 무조건 в Украине라고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는 독립한 주권 국가이니 말이다. 그래서 러시아어와 유사한 우크라이나어로 이를 표현할 때 в Україні라고 쓴다.
  • -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일반적으로 на Украине라고 쓴다. 왜냐하면 러시아인들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국명이기 이전에 러시아의 한 변방 지역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의 이러한 언어 습관이 우크라이나의 독립 주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국가를 폄하하는 것이라 간주하며 이에 강하게 반발한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러시아어 공식 명칭은 Посольство России на Украине이고, 우크라이나어 공식 명칭은 Посольство Росії в Україні이다. 이를 둘러싼 양국 국민들간 입장 차이가 분명하다보니, 일전에 러시아어를 알려주시는 분에게 '그러면 우크라이나에서 на Украине라고 말하면 어떻게 되나요?'하고 물었을 때 내가 들은 대답은 '좋은 결말은 못 볼 거예요.'였다.


글쎄, 그런데 오늘 벌어진 전쟁이 어떤 결말을 낳을지는... 언어 습관에서 뻔히 느껴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생각, 결국 그것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진 2022년의 하루였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