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다름슈타트(Darmstadt)로 간 뒤, 거기서 기차를 타고 바인하임(Weinheim)에 갔다. 승강장에서 나를 맞이한 Hannah는 예전보다 살이 무척 빠진 것같았는데, 아이 둘을 키우는 게 역시 보통 일은 아니라는 게 맞는 듯하다. 환대와 함께 집에 들어가니 남편이자 독일 Wiley의 Macro 저널의 편집장이기도 한 David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와인과 함께 하는 저녁을 같이 들었다. 빵과 치즈, 소세지와 올리브를 곁들인 아주 전형적인 독일식 저녁이랄까? 함꼐 나온 와인이 무척 맛있어서 정말 어려움 없이 잘 즐겼다.


10시가 될 때까지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무척 많이 했다. 요즘 사는 이야기, 요즘 한국의 근황, 요즘 독일의 근황,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빚어진 문제들 등등. 올해 우리 연구진이 작성해서 Macromolecular Rapid Communications에 게재된 리뷰 논문이 올해 가장 많이 읽힌 논문 중 하나라는 얘기도 들었다. 하긴, 요즘은 에너지나 지속 가능한 환경 이야기가 가장 핫한 연구 주제가 아니던가. 최근 손병혁 교수님 연구실 졸업생들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Hannah가 우리 연구실에서 DAAD 프로그램으로 처음 참여하게 된 게 2009년의 일이었으니 무려 13년 전의 일이었군! 그 이후로 IRTG 프로그램으로 함께 독일과 한국을 자유롭게 오가던 시절이 참 그리웠다 이런 얘기가 간간히 나오곤 했다. Hannah의 한국어 실력은 과거보다는 조금 퇴보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 인식하기에는 '아니, 독일 사람이 이렇게 한국어를...?'이라고 할 정도이니, 언젠가 출장이든 다른 기회로든 한국에서 꼭 볼 기회를 회사에서 제공해 주기를 기원했다.


와인을 잔뜩 먹어서인지 시차 적응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일어난 나는 한국에서 미리 가져간 코로나19 검사 키트를 활용해서 '음성'임을 재확인했다. 카푸치노를 마시며 아침 여유를 즐긴 나는 Hannah의 배려로 로젠브루넨(Rosenbrunnen)역까지 함께 걸어갔고, 거기서 Hannah와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트램을 타고 만하임(Mannheim)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많은 승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놀랐다. 누가 유럽 사람들은 방역 조치에 반발이 심하다고 했던가? 야외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았지만, 적어도 실내와 운송 수단 내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압도적 대다수였다.


만하임 초입에 등장한, 이름도 의미심장하게 '우정의 광장'이라는 뜻을 가진 플라츠데어프로인트샤프트(Platz der Freundschaft)역에서 마중 나온 Bernd와 그의 여자 친구이자 내일 결혼식을 올릴 Ekaterina ㅡ 서구권 사람들 스타일대로 줄임말로 Katy라고 불렀다. ㅡ 와 만났다. 우리는 조금 걸어가 에이브러험-링컨 길에 위치한 그의 집에 올라갔고, 거기서 Katy의 남동생도 만났다. 루마니아의 야쉬(Iași) 출신인 Katy에게 루마니아어로 '부너 지우아(bună ziua)'라고 인사했더니 아주 반가워했다. (사실 이젠 루마니아어로 아침, 낮, 저녁, 밤인사, 그리고 감사합니다 정도밖에는 더 이상 기억하는 게 없어서...)


점심을 먹기도 전부터 대접된 맥주 한 병을 일단 들이킨 나는 Bernd와 Katy, 그리고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루마니아에서 온 몇몇 루마니아인 친구들과 함께 Bernd의 고향이자 결혼식이 열릴 란다우인데어팔츠(Landau in der Pfalz)로 향했다. 오랜만에 Bernd의 부모님을 만나 인사했는데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만 4년만에 왔는데, 그 집의 정원이 예전보다 더 넓어지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란다우 시내의 한 터키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해결했는데, 나는 되너 케밥(Döner Kebab)을, Bernd와 Katy는 피데(Pide)를 나눠 먹었다. 잠시 시청이 있는 큰 광장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왔다.


결혼식은 토요일이지만, 루마니아와 한국에서 멀리 온 손님을 환영하기 위해 금요일 저녁 Bernd 부모님 댁에서 바베큐 파티가 열렸다. 거기서 나는 많은 루마니아인들과 독일인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우리 모두는 Bernd 여동생의 주도로 멋진 남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건배를 들기도 했다. 그릴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와 소시지는 무척 맛있었고, 빵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지역 양조장에서 배럴의 형태로 가져 온 맥주는 너무 맛있어서 맛본 모든 이들이 감탄해 마지 않았다. 액체 빵을 먹는 느낌이랄까 ㅡ 굉장히 목넘김이 부드럽고 탄산에 의한 그런 쏘는 맛도 없었다. 맥주와 리즐링(Riesling) 와인, 그리고 레모네이드를 섞은 보드카를 번갈아가며 마셨는데, 놀랍게도 취하지 않았다. 5시부터 시작한 파티는 9시가 되어서야 끝났고, 우리는 그 동안 정말 온갖 주제의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 다들 영어를 하는 데 문제가 없으니 이야기를 나누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아, 내가 20년전에 루마니아에 간 적이 있다는 것을 안 루마니아인 친구들은 놀라워하면서 어딜 갔냐고 물어봤고, 나는 부쿠레슈티와 콘스탄차, 시나이아를 갔다고 하니, 오히려 아쉬워하며 루마니아의 진면목은 산악 지방이라며 다음엔 꼭 거기를 가 보라고 추천했다. 이렇게 또 나중에 가 볼 곳이 생긴 셈이다.


파티가 끝나고 콜택시가 와서 나를 숙소로 데려다주었다. 우선 씻은 뒤 컴퓨터를 켜서 이메일을 확인해 과제 관련된 서류들이 도착했나 점검했고, 이 정도라면 일요일에 보름스(Worms)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진행해도 충분한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잠을 청했다. 독일에 오기 전에는 코로나 상황도 다시 심각해지는데 너무 무리해서 올 수 없는 곳에 억지로 온 것이 아닐까 우려했지만, 정작 독일에 도착하고나니 '오길 너무 잘했다.'라는 생각만 든다. 역시,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는 놓치는 것이 아니지, 초대해 준 Bernd에게 무척 고마울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