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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으니 이름하여 베이크 아웃(bake-out)이라는 과정이다. 열을 가해서 용기 내부 및 표면의 기화가능한 물질들, 특히 폼알데하이드(formaldehyde)를 제거하는 과정인데, 이것을 건축에 적용한 것이 되겠다. 유기화학 반응을 보낼 때 슈렝크 라인(Schlenk line)에 플라스크를 연결하고 진공을 걸어 내부 공기를 제거한 다음, 플라스크 겉면을 토치로 가열하면 플라스크 내부 벽면에 있는 미세한 습기까지 모두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데, 이런 비슷한 논리로 실내 온도를 상승시켜 집안 벽면과 바닥 등으로부터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강제로 빼내자는 것이다.
사실 이 과정 자체가 비과학적인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어떤 이의 대화에서는 습식 베이크 아웃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나, 피톤치드라는 말이 나오지 않나, 이런 추가 작업을 고려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놈의 피톤치드. 이 단어는 러시아 사람이 20세기에 고안한 명칭인데 화학적으로 정확하게 대응하는 분자나 혹은 분자군이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이런 유사과학적 이름이 널리 쓰이는 나라는 아마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면 별로 안 될 것이다. '식물'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φυτό-[피토]에 라틴어로 '죽이다'라는 뜻을 가지지는 동사 caedere[카이데레]를 합쳐서 러시아어로 Фитонцид[피톤치트]라고 부르는 이상한 혼종(?) 단어인데, 애초에 뜻 자체가 좋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라 이처럼 '식물로부터 생산되는 살균, 살충 능력을 가진 물질'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일본어 フィトンチッド[휘톤치도]를 거쳐 한국에 '피톤치드'라는 이름으로 상륙한 것이리라.
아무튼 피톤치드를 대표하는 물질 중 하나가 피닌(pinene)이라고 하는데, 삼림욕에서 피톤치드를 홍보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애초에 이 피톤치드라고 홍보되는 물질들 자체가 모두 휘발성유기화합물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식물로부터 외부로 방사되겠는가? 그런데 새집에서 나오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을 잡아내겠다고 피톤치드라는 ㅡ 그것도 폼알데하이드와 화학적 상용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을 ㅡ 또다른 휘발성유기화합물을 곳곳에 뿌려놓음으로써 집안의 폼알데하이드를 제거하겠다니 이처럼 허황된 게 어디에 있는가?
사실 베이크 아웃 자체도 뭐 획기적인 게 아니다. 집안에 수증기를 가득 뿌려 폼알데하이드를 잡겠다는 노력도 가상하긴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환기만 잘 시키면 될 것을. 이런 사람들이 꼭 환기는 신경 안쓰다가 나중에 '비싼 돈 들여 업체에 맡겼는데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며 불평할 사람들이다. 실내 방사능 수치든 유해물질의 농도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다름아닌 환기다.
나도 최근에 연락한 입주청소 업체에서 새집증후군 얘기를 하길래 괜히 얼굴 붉히며 입씨름 할 일 만들기 싫어서 그냥 기본적인 청소 정도에 신경만 더 쓰는 정도로 합의를 봤는데, 오픈카톡방의 사람들은 아주 진지하게 입주청소와는 별도로 이런 첨단 습식 베이크 아웃을 위해 50여만원의 돈을 더 지불할 생각을 하고 있다. 간교하게 화학 지식을 동원하면 사람들 상대로 돈 뜯어내기 참 쉽구나.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