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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된장, 다진마늘, 참기름을 넣어가며 무치노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이란 이렇게 늘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지. 하지만 개인에게 적절한 양을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만들어내고, 무작정 구매하고, 무작정 쌓아두다가 결국 대부분은 의미있게 쓰지도 못한 채 버리고 만다. 감정도, 재물도, 지식도.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런 불필요한 과잉생산과 과소소비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니, 세상은 인간의 활동이 만들어낸 온갖 쓰레기로 인해 더 어지럽고 무질서해질 뿐이로구나. 이런 바보같은 순환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 것인지, 어쩌면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지게 된 노동의 형벌이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런 고달픈 반복이 무한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과 그 반복된 고생이 우주적 엔트로피를 그저 늘리는 데 기여하는 물리학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참깨까지 솔솔 뿌려놓은 냉이무침 조각 하나를 확인차 무심코 먹자마자 이런 생각을 했다: 냉이를 많이 사두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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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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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끝끝내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