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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년 반 전에 경험한 이 영어(囹圄)와도 같은 생활. 물론 이틀에 10분 정도만 샤워할 시간이 주어졌던, 세 명이 같이 공유하고 있었기에 자유로운 생활이 불가능했던 의료원에서의 격리 생활보다야 훨씬 낫긴 하다. 무엇보다도 노트북 하나와 페르시아어 교본만 붙잡고 2주를 버텨야 했던 것보다야 집에서는 보고 듣고 즐길 것들이 훨씬 많지 않던가. 그 중 하나가 바로 건반이었다. 서울대 앞에서 자취하던 시절 나름 돈을 들여 개인적 취미 생활을 자취방에서도 이어가겠노라 다짐하고 샀던 전자 건반.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격리 생활을 다 마치기 전에 바흐(Bach)의 2성 인벤션(Inventionen) 15곡을 다 쳐보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피아노 학원 다니던 어린 시절, 바흐의 '인벤션과 신포니아'는 바르톡(Bartok)의 미크로코스모스(Mikrokosmos) 다음으로 해괴한 연습곡이었다. 오른손은 멜로디, 왼손은 반주 혹은 서포트의 역할을 해 준다는 통념을 완전히 깼던 연습곡이었으니까. 당시 피아노 학원 선생은 오른손이 '너 짜장면 먹었니?' 하면, 뒤이어 왼손이 '응, 나 짜장면 먹었어.'라고 답하는 음악형식이라고 했다. 쉽게 말하자면 기악적 돌림음악이라고 하면 되겠다. 하지만 그런 짜장면 비유 말고도 ㅡ 비록 내가 어린 나이긴 했지만 ㅡ 대위법(對位法, counterpoint)이라든지 푸가(fuga)라는 게 이런 거라고 얘기해줬다면 오히려 더 좋아했을텐데. 그래도 뭐 짜장면 이야기가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그분의 가르침은 성공한 듯 하다.
마침 확진되기 전 주말, 인터넷에서 혹시 몰라 교회 반주 중 전주(前奏, prelude)나 후주(後奏, postlude)로 쓰일만한 곡을 찾다가 파헬벨(Pachelbel)의 오르간곡을 인쇄했는데, 하필이면 그게 「Fugues on the Magnificat Primi Toni」였다. 적절히 우리 말로 옮기자면 「도리아(Doria) 선법에 맞춘 성모 마리아 송가 주제의 푸가」라고 하면 될 이 곡들 역시 저 짜장면 방식을 따라 작곡된 곡이다.
그런데 여러번 바흐와 파헬벨의 곡들을 치다가 문득 그런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이 다성음악(多聲音樂, polyphony)은 마치 전염병에 휩쓸린 우리 삶과도 같네. 오른손이 표현한 주제는 왼손에서 반복된다. 물론 바흐의 신포니아(Sinfonien)나 더 복잡한 다성음악으로 가면 주제가 세 번, 네 번도 반복되면서 확장, 변용되며 여기저기서 귓가를 울려댄다. 이런 반복, 하지만 똑같지많은 않은 반복 ㅡ 1년 반 전의 격리도 오늘 다시 반복되었고, 2년 전 코로나바이러스로 놀란 가슴은 이번 주 화제가 된 원숭이 두창(monkeypox) 바이러스를 보고 또 놀라고, 대침체의 늪은 또다시 일렁이는 파도처럼 반복하여 찾아오고... 푸가 악보를 보면, 처음 악곡의 주제가 오른손에 의해 제시되었을 때에는 꽤 명료하고 단순하게 보였지만, 곡 중반부를 넘어가다보면 손가락이 10개인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온갖 음표들의 향연이 펼쳐지곤 한다. 이게 마치 반복되는 아우성이 켜켜이 쌓인 이 세상을 꼭 닮았다.
아래 공유한 유튜브 음악은 어떤 유능한 사람이 COVID-19 주제에 맞춰 작곡한 푸가이다. COVID-19를 Cº-V-I-D-1-9로 나눠놓고, 각각 감7화음(diminished 7th), 딸림조(dominant), 으뜸조(tonic), 버금딸림조(subdominant), 1음, 그리고 ♭9으로 해석하여 주제를 짰다. 이 영리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좀 우스워보이는 이 아이디어, 하지만 재생 버튼을 누른 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악에 이내 묘하게 빠져들어 마지막에 영상이 끝날 때엔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모든 것은 돌고 돈다. 음표들이 정신없이 ㅡ 그러나 계획적으로 돌고 돌다가 정리가 될 때쯤에 장엄하게 마무리되는 덧이 푸가이다.
우리의 삶 역시 이런 것 아닐까. 우리의 세상도.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