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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토)]
독일인 남편 Bernd와 루마니아인 아내 Ecaterina의 결혼은 일종의 혼합 형태로 치러졌다. 아침에 간편한 복장으로 Bernd 집으로 가서 빵과 흰 소시지(Weißwurst)를 먹고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 배를 채우고 있었는데, 아뿔싸 ㅡ 아침 식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전통적으로 가까운 남자 하객들은 신랑을, 가까운 여자 하객들은 신부를 아침에 치장하여 집안에서 서로 대면하고 꽃을 나누는 행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한 독일인들(과 한국인인 나)의 복장은 그야말로 집에서 아침 식사하기 위해 모인 수준... 새로운 옷을 차려 입은 새신랑과 새신부의 모습은 근사했고, Bernd 집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연신 핸드폰을 꺼내 사진 찍기에 바빴다.
잠시 호텔에 들러 한국에서 가져 온 정장으로 갈아 입고 Bernd 삼촌 부부의 차를 타고 결혼식이 열리는 관청에 갔다. 독일 결혼식은 크게 관청에서 진행하는 예식, 교회에서 진행하는 예식, 그리고 이후 피로연으로 구성된다고 하는데, 이 친구들은 종교적 예식을 생략했기 때문에 관청에서 진행하는 예식이 유일하게 공식적인 행사였다. 예식장은 관청 내에 마련된 강의실같은 작은 강당이었는데, 강당 앞쪽에는 탁자가 놓여있었고, 모든 하객들은 강당 내에 있는 의자에 차례로 착석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양가 부모님 역시 다른 하객들과 마찬가지 자리에 앉았는데 이는 본인들 역시 결혼식의 하객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한국 결혼식에서 양가 부모님이 맡은 역할이 따로 있으며 ㅡ 촛불을 밝힌다든지, 신랑신부를 대표하여 인삿말을 한다든지 ㅡ 그들이 앉는 자리가 다른 하객들의 자리와는 달리 특별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결혼식이 '부부의 행사'가 아닌 '가문의 행사'라는 것을 상징하는데 말이다. 이윽고 행사를 진행하는 관청 직원이 들어와 마치 교회의 사제처럼 청중들을 향해 의자에 앉았고, 탁자를 사이에 두고 신혼 부부는 직원 맞은 편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이들 둘을 연결해 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부부도 탁자에서 약간 떨어진 쪽에 앉았는데, 아내는 신부 측에, 남편은 신랑 측 가까이에 앉았다. 그리고 관청 직원 옆에는 행사를 진행하는 직원의 말을 통역해 줄 신부 오빠가 앉았다 ㅡ 그는 독일어와 루마니아어를 모두 유창하게 잘 하는 사람으로 아침부터 예식 문서를 루마니아어로 번역하느라 정신 없었던 것을 봤다.
예식에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독일어와 루마니아어 청해(聽解)가 불가능한 나로서는 몇몇 단어들로 드문드문 그 좋은 주례사를 때려맞혀 이해하는 편이었다. 마지막에는 부부의 연을 맺을 남편과 아내가 일어섰고, 직원은 남편의 이름과 주소 등등을 읊은 뒤 결혼 서약을 묻는 질문을 했다. 남편은 'Ja(예)'라고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직원은 아내의 이름과 주소 등등을 읊은 뒤 결혼 서약을 묻는 질문을 했다. 아내 역시 'Ja(예)'라고 대답했다. Bernd의 조카가 나와 신혼 부부에게 가락지 한 쌍을 주었고, 부부는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었다. 모든 이들이 키스하는 부부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쳐 주었고, 이윽고 부부는 관청 직원이 보는 앞에서 어떤 문서에 사인을 차례로 했다. 아마도 혼인 신고서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들 결혼의 보증인으로서 신랑과 신부 가까이 앉아 있던 부부도 역시 차례로 사인을 했다. 한국에서는 혼인 신고서 작성과 혼인식이 완전 별개의 행사인데 ㅡ 게다가 전자는 부부가 따로 관청에 가서 알아서 하는 것이기에 하객들의 관심 밖이다. ㅡ, 독일에서는 혼인식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이 혼인 신고서 사인이었다. 관청에서의 예식이 끝나자 모두 밖으로 나가 하나의 새로운 가정을 이룬 새 부부가 걸어나오는 모습을 축하해주었고, 스파클링 와인을 나누며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아, 그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Florian과 Johanna, 그리고 Katta을 만나 인사했다. 그리고 Florian의 가족들 ㅡ 무려 그는 아들 하나에 딸 둘! 그리고 아내는 현재 넷째 임신 중 ㅡ 과 재작년 결혼한 Katta의 아내 Sushmitha도 만나 인사할 수 있었다. 원래 재작년에 코로나19가 퍼지기 전, Katta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2020년 2월에 인도에 갈 계획이었는데, 연구원에서 출국 전날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해외 출국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그 뜻을 거역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비행편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때 너무 못 가서 아쉬웠는데... 이 친구들에게 주려고 재작년에 샀던 선물을 이날에야 전달해 줄 수 있었다.
피로연장은 호텔 맞은편에 자리잡은 한 바였다. 애석하게도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매우 더운 하루였지만 다들 불평하기보다는 더우면 좀 더 시원한 실외로 나가 땀을 식히고 그랬다. 모두들 피로연장에서 꽤나 품질 좋은 와인과 맥주를 들이켰고, 특히 루마니아에서 특별히 신부 측이 담근 술도 경험해볼 수 있었다 ㅡ 도수가 너무 높아 깜짝 놀랐다! 샐러드와 스테이크가 서빙되는 동안 새 부부는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Nat King Cole이 부르는 'Love'에 맞춰 춤을 추었고, 신랑측의 아버지와 여동생은 갓 결혼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둘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공통점이 있는지를 슬라이드 쇼를 통해 보여주었다. 나도 그제서야 이 둘의 연애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어 결혼에 이를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피로연 분위기는 루마니아 전통 음악이 흘러나오며 무르익었다. 하객 모두가 앞으로 나와 둥글게 서서 마치 강강수월래를 하듯 돌고 돌고 또 돌았다. 너무 더웠지만 그래도 흥겹게 춤을 추었다. 이후로 피로연장에 와 있던 DJ가 다양한 흥겨운 음악을 틀었고, 저녁 식사도 어느 정도 하고 술도 마시며 흥이 오른 신랑신부와 하객들은 바 중앙 공간에서 여러 모양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무려 새벽 2시까지. 나도 결국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넥타이를 입은 상태로 요리조리 몸을 흔들다가 DJ가 '강남 스타일' 노래를 틀어버린 순간 제어 불능 상태가 빠지고 말았다. 남녀노소, 국적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말춤을 추는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다.
Bernd 내외에게 주려고 사 온 괘불[삼재(三災)를 막아준다는 의미로 삼각형 모양의 구조가 여러개 매달린 형태의 전통 노리개]과 함께 100유로 지폐를 한국식 축의금 봉투에 담아 선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BASF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Bernd가 UCSB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던 시기에 만난 독일인과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양가 부모님에게도 축하한다는 인사를 연신 했다. 태어나서 아마 한국인을 처음 봤을 어린이들은 내 옷을 당겨도 보고 호기심 어린 눈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중간중간 루마니아 전통 음악이 흘러나오면 실내 혹은 실외에서 좀 쉬고 있던 사람들은 '무조건 그래야한다는 듯' 실내로 들어가 손을 맞잡고 강강수월래를 했는데, 나는 이걸 루마니아식 전통 춤(dance)이 아니라 유산소 운동(cardio)과도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참고로 피로연장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코로나19의 확산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에 신경쓴답시고 마스크를 귀에 걸친 사람은 없었다. [하긴, 신부 측 아버지는 마스크를 쓰고 아침 식사 자리에 온 내게 여기는 Krankenhaus (독일어로 병원)가 아니라며 가벼운 농담성 면박을 주긴 했다.]
자정이 넘자 집에 들어가야 할 하객들은 이미 새 부부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고, 나를 비롯한 몇몇 하객들은 신랑측이 맞은편 호텔에 숙소를 잡아준 덕에 새벽 2시까지는 더 신나게 놀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는 못 속이는지 모두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음악이 나와도 춤을 추기보다는 선선한 바깥으로 나와 목을 축이는 것을 더 선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정도 숙소로 돌아갈 타이밍이 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다른 하객들과 함께 인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피로연장에서 호텔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였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없이 돌아올 수 있었고, 나는 씻고 바로 잠을 청했다. 새로운 경험을 되새기고 정리할 새도 없이 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